잊고 있던
‘승리의 역사’로 돌아온
강제규 감독
글 편집실
영화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등을 연출하며 한국 영화 블록버스터 시대를 연 강제규 감독.
2015년 개봉한 <장수상회> 이후 무려 8년이라는 공백을 깨고, 최근 영화 <1947 보스톤>으로 우리 곁을 찾아왔다.
강제규 감독
<1947 보스톤>을 연출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특정 선수 한 사람의 일대기를 다룬 이야기였다면 아마 끌리지 않았을 것이다. 성격과 서사가 다른 세 인물이 하나의 목표로 협업하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대회의 주역 손기정 선수 외에도 잘 알지 못한 역사를 끄집어내서 관객과 공유하는 것이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2020년개봉 예정이었다고….
코로나19의 발생으로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 설상가상으로 얼마 뒤 연이어 불거진 주연배우들의 구설수로 개봉 가능성은 더욱 묘연했다. 이런 악재로 개봉까지 긴 기다림이 있었으나, 컴퓨터그래픽이나 음향 등 후반작업을 더욱 촘촘히 만질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고 위안 삼고 있다.
영화는 광복 직후 정부도 수립되지 않았던시기의 설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실제 이야기를 왜곡 없이 전달하되 영화적재미도 더해야 하는 것이 과제였을 듯하다.
이를 위해 방대한 인물 자료를 검토하고 유족들을 만나는 등 고증에 힘썼다. 영화의 속성상 역사적인 사실만 가지고 영화를 구현할 순 없기 때문에 인물을 어디까지 조명하고 어디까지 창작할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 실화이기 때문에 움직일 수 있는 보폭이 적은데 유족들의 요구 사항도 있어서 이를 절충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 입장을 알게 되면서 더 공부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어떤 목적을 위해 사실을 과장하고 왜곡하는 게 일종의 나쁜 신파이자 ‘국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최소화하려 노력했다. 이미 손기정·서윤복·남승룡 세 마라토너가 만든 역사 자체가 드라마틱해서 뭘 더 얹을 필요가 없었다. 절대 감동을 강요하지 말자는 게 우선순위였다.
영화 <1947 보스톤> 스틸컷
영화의 절정은 1947년 4월 19일 열린제51회 보스턴마라톤대회 장면이다.
마라톤은 재미없다는 선입견을 불식시키기 위해 관객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영화적 상상을 하더라도 과도한 설정은 배치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예를 들어 실제 기록을 보면 경기 중 서윤복 선수가 넘어져서 다리에서 피가 흘렀다는 내용이 있는데, 영화에서는 피까지 보이면 오히려 과해 보일 것 같아 일부러 피를 안 바르고 촬영했다. 또한 실제로는 마라톤화 끈이 풀려 서윤복 선수가 레이스에 큰 지장을 받았는데, 이 또한 관객이 작위적인 설정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 제외했다.
70여 년 전의 보스턴을 재현하는 것이만만치 않았을 텐데….
실제 보스턴마라톤대회 코스를 여러 차례 돌아봤지만, 너무 변해버린 집들과 수많은 자동차 등을 해결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또한 촬영 시 주요 도로를 통제해야 한다는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최종적으로 호주 멜버른 근교에서 촬영했다. 라트비아·폴란드·헝가리·우루과이 등을 돌아본 후 찾아낸 곳이었다. 하지만 호주에 입국했을 때 멜버른에 큰 산불이 나서 또 다른 난관에 부딪힐뻔 했지만, 맑은 날씨 덕에 무사히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영화 <1947 보스톤> 촬영 현장
손기정·서윤복·남승룡은 사진이 남아있는인물이기에, 이들을 고스란히 소화할 배우를 찾는 일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캐스팅은 외적인 일치감이 첫 번째 원칙이었다. 실존 인물과 판이할 경우 관객들이 동화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하정우·임시완 배우의 일치율이 굉장히 높다고 생각했고, 캐스팅 1순위였다. 실제로 엔딩크레딧에 등장하는 당시 사진을 보면 두 배우의 싱크로율이 꽤 높다는 생각이 든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전쟁,<마이웨이>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영화였다. 두 영화 모두 잘 알려지지 않은실존 인물을 다뤘으며, 이번 영화 역시역사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조명했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마이웨이>처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그분들이 우리에게 거울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1947 보스톤>은 되도록 실존 인물들의 원형에 근접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생각으로 작업했다. 역사적 사실 앞에서 더 겸손하고 겸허하게 최대한의 사실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고, 다시 한번 바른 시선으로 바른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다.
끝으로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있다면?
거대한 벽을 뚫고 위대한 도전을 해낸 역사의 기록 그리고 우리가 잘 알지 못한 승리의 역사 한 페이지가 잘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어려웠던 시기에 성취했던 위대한 승리를 접한 관객들이 희망과 용기를 얻길 바란다.
영화 <1947 보스톤> 포스터
<1947 보스톤>은 1947년 태극마크를 달고 미국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서윤복 그리고 그를 지도한 손기정과 남승룡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광복의 기쁨도 잠시, 정부도 수립되지 않았던 1947년을 배경으로 한 이번 영화는 불가능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렸던 마라토너들의 뜨거운 이야기를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