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 독립기념관 8월호
사(史)적인 여행

이국땅에 깃든 선열의 숨결

중국 뤼순

 

글·사진 박광일 (역사여행작가·여행이야기 대표)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이 많다. 

올여름, 시원한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휴양지도 좋지만 보다 이색적이고 의미 있는 곳으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광복절을 앞두고 우리나라 독립운동가의 숨결이 고스란히 깃든 중국 뤼순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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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아감옥구지 외부(좌), 일아감옥구지 내부(우)

안중근이 수감·순국한, 일아감옥구지

랴오둥반도 서쪽 끝에 있는 항구도시가 뤼순과 다롄이다. 이들은 본래 서로 다른 도시였지만, 지금은 다롄시 안에 뤼순구가 포함되어 있다. 뤼순의 공식 행정구역명은 뤼순커우구(旅順口區)이다. 뤼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안중근이 갇혀있던 뤼순감옥과 재판이 이뤄진 관동도독부 법원이다. 뤼순감옥의 공식 이름은 ‘일아감옥구지’이다. ‘일아’에서 일(日)은 일본, 아(俄)는 러시아를 가리킨다. 곧 하나의 감옥이지만 러시아와 일본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라서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 실제로 감옥의 정면 건물과 내부 옥사 중 중심부는 러시아가 짓고, 이후 증축부는 일본이 지었다. 이후 몇 번의 증축으로 인해 규모가 커졌고, 1934년쯤 지금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안중근이 이곳에 갇혀있던 시기는 1909년 11월에서 1910년 3월까지였다.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뒤 12시간 정도 러시아 헌병의 조사를 받은 안중근은 이후 일본의 총영사관으로 넘겨졌다. 

당시 국외 한인에 대한 재판은 서울 곧 한양에서 하거나 혹은 나가사키 지방 재판소에서 진행해야 했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 재판을 진행하더라도 세계 여러 사람의 이목이 집중된다는 점에서 일본으로서는 부담이 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본의 침략과 한국의 독립에 대한 열망이 드러날까 두려웠다. 이 같은 이유로 일본은 최대한 폐쇄적인 공간인 관동도독부, 곧 뤼순의 재판소를 선택했다. 뤼순감옥을 둘러보면 안중근이 갇혀있던 공간이 별도로 표시되어 있다는 점을 눈치챌 수 있다. 당시에도 안중근이 조금은 특별한 존재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는 안중근을 회유하려는 목적도 가지고 있었다. 곧 독립전쟁의 포로, 혹은 정치범으로서 안중근 ‘의사’가 아닌 일반 ‘범죄자’로 만들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회유가 실패로 돌아가자 결국 일본 정부는 지침을 통해 사형을 선고하였다. 

다만 아쉬운 부분도 몇 가지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안중근이 순국한 장소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단독 건물로 만들어진 사형장은 1930년대에 지은 것이다. 그가 순국할 당시에는 감옥 건물 2층에 사형장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또 제3의 장소에 사형장이 있었다는 배치도가 발견되기도 해서 현재까지는 학자들에 따라 의견이 나뉘고 있다. 무엇보다 안중근의 유해를 묻은 곳이 밝혀지지 않아 많은 사람이 애를 태우고 있다. 최근에는 뤼순감옥 동쪽에 있는 ‘뤼순감옥구지묘지’, 곧 뤼순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의 공동묘지 일대를 유력한 장소로 보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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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도독부법원 

Tip 1. 안중근의 재판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광동도독부법원’

안중근의 재판에 대해 조금 더 집중하고자 한다면, 뤼순의 관동도독부법원을 찾으면 좋다. 이 법원 건물은 한동안 병원 건물로 쓰이다가 다시 관동도독부 법원의 모습을 되찾았다. 1층에는 전시 공간이, 2층에는 당시 재판 장소이던 법정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 한쪽에 재판 당시 모습을 찍은 사진에서 안중근, 조도선, 유동하 등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법정 옆에 조그마하게 안중근를 기념하는 공간도 있다. 수의를 입고 있는 안중근의 사진과 함께 유묵도 있어서 잠시 묵념을 할 수 있는 장소이다. 


Tip 2. 다양한 언어로 적혀진 ‘수형자 규칙’

뤼순감옥에는 당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수감되었기 때문에 ‘수형자가 지켜야 할 규칙’ 여러 나라 언어로 적혀있다. 첫 번째는 일본어, 다음으로 한자와 한글, 그리고 중국어로 적혀있다. 이를 통해 뤼순감옥이 가진 성격이 어떠한지 짐작해 볼 수 있다. 한편, 뤼순감옥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는 안중근 외에도 신채호 등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뤼순감옥을 찾는다면 낯선 땅에서 눈 감을 수밖에 없었던 애국선열들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일아감옥구지 주소

라오닝성 다롄시 뤼순커우구 향양가 1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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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순역(좌), 백옥산탑(우)

뤼순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뤼순역과 백옥산탑

러시아풍의 건축물로 시선을 사로잡는 뤼순역은 남만주철도가 뤼순까지 연결되었을 때 러시아가 건설했다. 인근에 뤼순항이 있으니 항구와 연결된 중요한 철도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의 건설 시기는 1900년경으로, 본격적인 운영은 1903년 곧 철도의 완성과 함께 이뤄졌다. 1909년, 안중근 역시 거사 후에 철도를 이용해 이곳에 도착했으니 바로 이 역에도 그의 발자취가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뤼순역 뒤로 크고 높은 탑이 눈길을 끈다. 백옥산탑으로 불리는 이곳은 거리가 꽤 떨어져있어 택시로 이동하는 것을 추천한다. 

1909년 11월 일본은 러일전쟁 당시 뤼순전투에서 전사한 일본군들을 추모하고자 위령탑을 세웠고, 이를 ‘표충탑’이라고 불렀다. 이후 일본이 패망한 뒤, 이 건축물을 놓고 중국 내에서 논란이 일었다. 중국 처지에서 보면 이 건축물의 목적이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헐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그 역시 노력이 많이 들어가니 침략의 표상으로 남겨두고 이름만 ‘백옥산탑’으로 변경하였다. 한편 백옥산탑은 뤼순 일대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서서 눈앞에 펼쳐진 뤼순항의 전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왜 이곳이 천혜의 요충지인지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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