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 독립기념관 8월호
어제와 오늘을 잇는 사람

40년 간 걸어온
역사가의 길

박환

 
글 편집실 
 

1986년부터 한국독립운동사를 연구해 온 박환 수원대 사학과 교수가 최근 정년퇴임을 앞두고 자신의 학문 여정을 돌아보는 전시를 열었다. 

박환 교수는 잊힌 러시아지역 한인독립운동사 연구를 개척한 한편, 안중근의사 단지동맹비 등 주요 현충시설물 설치 자문 등 외교 발전에 기여한 한국독립운동사 연구 분야의 대표적인 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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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환 교수

40년 가까이 걸어온 대학교수 생활에 곧 마침표를 찍는다.

곧 떠날 채비를 하니 섭섭함보다는 시원함이 크다(웃음). 역사가의 길을 걸은 지 30여 년의 세월. 독립운동, 그 가운데서 공간적으로는 중국·러시아·중앙아시아·경기도, 시간적으로는 근현대시기에 주로 몰두하였다. 지금도 현장답사의 기억들 하나하나가 생생한데, 어느덧 긴 시간이 흘렀다. 물론 고난과 시련, 어려움도 있었다. 이를 극복하도록 도와주신 주변의 따뜻한 격려와 온정이 항상 있었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


고집스럽게 ‘역사 속 잊힌 존재들’을 탐구해 왔다.

역사학자로서 역사에서 잊힌 인물과 사건을 발굴한 것은 당연한 소명이라 생각한다. 1990년대에 구소련을 누비며 러시아 연해주에서 항일운동을 펼친 최재형의 흔적과 기록을 발굴했고, 2003년에는 경기도 화성 지역의 독립운동가 수형 카드를 입수해 화성 3·1운동을 주도한 36인의 사진을 처음 공개하기도 했다. 또한 인권적 차원에서 접근한 ‘국민 방위군 사건’ 등도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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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환, 역사가의 길> 전시 전경

특히 러시아 연해주나 중국 동북지역과 같은 대륙에서 일어난 한인독립운동사에 집중해 왔다.

첫째로 잘 알려지지 않은 러시아 연해주, 중국 동북지역, 시베리아 등에 대한 호기심과 열망이 작용했다. 특히 러시아 지역의 독립운동사는 그 중요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데다 그곳에서 전개된 무장투쟁 역시 저평가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 이 분야를 전공한 선친이 살아계실 때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다. 이러한 배경들이 대륙의 독립운동에 관심을 가지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희미해진 과거를 되짚어 진실을 찾아가는 일은 고난의 연속일 텐데….

역사학자의 길은 끊임없는 연구와 답사로 요약될 수 있다. 연구가 문헌사료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면, 답사는 사료들의 현장을 직접 목도함으로써 사료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현장답사를 통하여 비로소 역사가의 논문과 저술이 완성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가장 오래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하면서도, 가장 오랫동안 바깥으로 돌아다녀야 하는 직업. 이것이 역사학자의 숙명이다.


최근 그간의 연구 성과를 한 자리에 볼 수 있는 전시를 개최했다.

이른 감은 있으나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그동안의 작업을 회고기적 성격으로 정리해보고자 했다. 1991년 처음 펴낸 『만주한인민족운동사연구』부터 최신작 『100년을 이어온 역사가의 길』까지 지금까지 출간한 50여 권을 한자리에 모았다. 지역별로는 중국 동북지역·러시아·중앙아시아·한국을, 시대별로는 구한말부터 한국전쟁기까지 다룬다. 아울러 대학·대학원 시절 썼던 한국사 강의노트와 논문초고, 현장을 답사하면서 남긴 메모, 모스크바 레닌도서관을 이용할 때 썼던 열람증, 2005년부터 2010년까지 회장을 맡았던 한국민족운동사학회의 연구 학술지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자료 등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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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개최 인사말을 전하는 박환 교수

이번 전시에서 4대가 역사가인 가족의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다고….

조부 故 박장현 선생께서는 식민시대의 역사학자였고, 선친 故 박영석 선생께서는 건국대 사학과 교수와 국사편찬위원장을 역임했다. 또한 나의 자녀들도 역사학을 공부하고 있다. 이렇듯 조부, 선친에 이어 자녀들까지 4대가 대대로 역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가족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소개하고자 했다. ‘역사 명문가’라는 명예를 이어가는 것이 소원이지만, 간단한 일이 아닌 만큼 무게감과 사명감을 갖고 있다. 시련 속에서도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 열린 마음만이 살길이 아닌가 한다.


퇴임 후 계획이 궁금하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다. 역사가가 전하는 한 마디마다 그 파급 효과는 어마어마하다. 그만큼 역사에 대해 어떤 주의 주장을 내세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무거운 책임감은 퇴임 후에도 계속될 것 같다. 앞으로도 소외된 역사를 계속 발굴하고, 더 폭넓은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볼 예정이다.아울러 그동안 독립운동사는 애국·민족주의를 토대로 특정 인물의 영웅적인 측면만 강조해 왔다. 대중에게 덜 알려진 독립운동가들이 어디로 이주했고, 어떤 활동을 했는지 살펴보려 한다. 이를 통해 평화 같은 보편적 차원의 인권 문제로 논의를 확장하고 싶다.


어떤 역사가로 기억되고 싶나?

그간의 연구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대륙의 잊힌 혁명가 발굴과 부활’이 아닐까 싶다. 러시아와 중국 동북지역에서 일어난 독립운동사 연구의 개척자로 기억되고 싶다. 또한 100년 동안 역사를 공부한 집안의 한 사람으로서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학자로 평가받기를 기대해 본다. 가능한 일일까? 부끄럽고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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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노마만리 김종원영화도서관

주소 : 충남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마정리 312-1

기간 : 2023년 8월 27일까지

문의 : dida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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