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 독립기념관 8월호
이달의 독립운동가

‘간도 15만원 사건’의 주인공들

윤준희·임국정·한상호·김강

 

글 독립기념관 전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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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혈광복단과 ‘간도 15만원 사건’

1920년 1월 4일 한인 청년들은 조선은행 룽징(龍井)출장소로 향하던 일제 수송대를 상대로 일화 15만원을 탈취해내는 거사에 성공했다. 거사에 가담한 청년은 윤준희, 임국정, 한상호 등으로 이들은 철혈광복단(鐵血光復團) 단원이었다. 북간도 지역 민족학교 출신 청년들이 1918년에 조직한 철혈광복단은 1919년 9월 즈음부터 독립전쟁을 위한 대규모 자금을 마련하고자 ‘간도 15만원 사건’을 면밀히 준비했다. 이들은 조선은행 직원을 설득한 끝에 수송 계획을 알아냈고 1920년 1월 4일 거사에 성공했으며, 북간도 독립운동 단체들과 긴밀히 협의해 독립전쟁에 사용될 군수품 구입을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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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행 룽징출장소

조선은행 직원을 설득해 의거를 거행한 윤준희

윤준희는 1895년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태어났다. 북간도 룽징으로 이주한 그는 서전서숙(瑞甸書塾)에서 수학하고 영신학교(永新學校)에서 교원으로 활동하며 한인교육에 힘썼다. 윤준희는 임국정 등과 함께 청년맹호단(靑年猛虎團)을 조직해 북간도 내 한인 밀정과 친일 협력자들에게 경고문을 살포하고 군자금 모집을 위해 노력했다. ‘간도 15만원 사건’의 거사 계획과정에서 윤준희는 조선은행 회령지점의 서기 전홍섭을 설득해 자금 수송계획을 알아냈고, 거사 성공 후에는 자금 및 서류 관리를 총괄하며 임국정의 무기 구입을 도왔다. 그는 밀정의 밀고로 1월 말 일경에 붙잡혀 사형을 선고받고 1921년 8월 25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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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신학교 전경(좌), 「간도 청년맹호단의 경고문」 (1919.12.05.)_국사편찬위원회 제공(우)

독립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무기 구입을 주도한 임국정

임국정은 1896년 함경남도 함흥군에서 태어나 가족들과 함께 일찍이 북간도로 이주했다. 창동학교(昌東學校)를 졸업하고 독립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동림무관학교(東林武官學校)에 입교했다. 그는 1919년 2월 25일 러시아 니콜리스크에서 개최된 전로국내조선인회의에 학생대표로 파견되기도 했다. 1919년 9월 즈음부터 ‘간도 15만원 사건’을 계획한 임국정은 윤준희와 함께 조선은행 회령지점의 서기 전홍섭을 설득했고 거사 성공 후, 대한국민의회(大韓國民議會)와 논의하여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넘어갔다. 그 곳에서 무기 구입을 위해 활동하던 중 밀정의 밀고로 1월 말 일경에 붙잡혀 사형을 선고받고 1921년 8월 25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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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준희, 임국정, 한상호, 전홍섭의 판결문_국가기록원 제공

일화 15만원을 약속장소로 운송한 한상호

한상호는 1900년 함경북도 경성군에서 태어나 일찍이 북간도로 이주했다. 명동중학교(明東中學校)에서 신학문을 배웠으며 졸업 후 와룡소학교(臥龍小學校)에 재직하며 한인교육에 힘을 기울였다. 룽징 3·13 만세시위 이후 본격화된 독립전쟁 준비를 위해 한상호는 자신의 집에 있는 송아지를 팔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갔고, 한인 청년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20년 1월 4일 ‘간도 15만원 사건’의 거사 당일에는 탈취한 현금을 약속 장소로 옮기는 역할을 담당했고, 이튿날 자금을 이송하는데 성공했다. 무기 구입을 위해 노력하던 한상호, 윤준희, 임국정은 은신처에 머물다가 일경에 붙잡혀 사형을 선고받고 1921년 8월 25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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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준희, 임국정, 한상호, 전홍섭의 판결문_국가기록원 제공

북간도 지역 독립운동단체 간도청년회의 발기인 김강

김강은 평안도에서 태어나 평양 숭실학교(崇實學校)에 재학하던 중 ‘105인 사건’에 관련되어 일경에 붙잡힐 위험에 처하자 1912년 간도로 망명했다. 그는 1913년 한인 자치단체 간민회(墾民會)에서 일본조사부원으로 활동했고, 1919년 11월 간도청년회(間島靑年會)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1920년 9월부터 일제는 중국 동북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한인들을 탄압하고 독립군을 해산하기 위해 대규모 정규군을 출병시켰다. 이 과정에서 김강은 1920년 11월 13일 ‘간도 15만원 사건’의 관계자라는 죄명으로 일본군에 붙잡혀 피살 순국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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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령선인 간도청년회 취지서 배포의 건」_국사편찬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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