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독립운동가의 얼굴을
화폭에 담아내는
주환선 작가
글 편집실 사진 주환선 제공
나라를 위해 온몸을 던진 독립운동가들의 얼굴을 화폭에 담고 있는 사람이 있다.
유화와 일러스트 위주로 10년째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주환선 작가다.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의 얼굴을 담아낸 그의 작품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어느덧 독립운동가에 대한 존경심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주환선 작가
독립운동가 초상화를그리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어린 시절부터 역사와 그림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후 일본 도쿄에 5년가량 머무르며 그래픽디자인 분야를 공부했다. 2013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우연히 안중근 의사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고, 그림으로 남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가장 아프고 치욕스러웠던 시대의 영웅들을 작품으로써 한자리에 모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독립운동가 초상화 작업을 꿋꿋하게 이어오고 있다.
나를 마주보다 시리즈 <안중근>, 유화
지금껏 몇 명의 독립운동가를 그렸나.
안중근 의사를 시작으로 현재 유화 약 25점, 일러스트 약 150점을 작업했다. 유화는 김구나 안창호와 같이 많이 알려진 인물 위주로 작업하고 있고, 반면 일러스트는 여러 인물을 알리고 싶은 목표가 있어서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 위주로 작업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의 부당함을 알리고 있는 일본인들의 일러스트 작업을 진행 중이다.
유화 속 인물에는 눈을 그리지 않는다. 특별한 의도나 이유가 있나.
흔히 눈을 마음의 창이라고 한다. 또한 초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이 눈의 완성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독립운동가의 눈을 묘사할 때 자꾸만 붓이 헛도는 느낌을 받았다. 명확히 표현해야 하는 부분을 터치하지 못하고 주변만 계속 맴돌았다. 그렇게 며칠 동안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그대로 멈춰 있었다. 그때 ‘아, 이게 부끄러운 마음 때문이었구나.’라고 깨달았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제대로 잘 알지 못해서 또는 현재 편한 일상을 누리고 있는 스스로가 부끄러워서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했던 것이다. 이 같은 이유로 독립운동가들의 눈을 그리지 못한 채 뭉그러트리는 방식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눈이 없는 독립운동가를 마주한관람객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신기해하거나 의아해하기도 하고, 눈이 그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로 둘러싸인 전시장 한가운데 서 있으면 괜히 으스스한 기분이 든다고도 한다. 의도를 알고서야 감동받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한편 독립운동가의 사진을 찾아서 그림과 비교해보며 인물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는 관람객을 만날 때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나를 마주보다 시리즈 <백정기>, 유화(좌) / 나를 마주보다 시리즈 <두군혜>, 유화(우)
작업을 이어 오며 어려운 점이나고충도 많았을 것 같다.
전업 작가이기 때문에 그림으로 수익을 만들어야 하는데, 독립운동가의 초상화는 판매로 잘 이어지지 않아서 금전적인 문제로 힘들 때가 있다. 작업 면에서는 임시정부 주요 인물이 아닌 무명의 독립운동가들은 남아있는 문헌이나 사진 자료가 많지 않아서 고충이 있을 때가 있다. 게다가 인물의 스토리와 정보를 먼저 공부한 후에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해야 하기에 다른 작품에 비해 작업 기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어려움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한길을 걷고 있는데,그 원동력이 무엇인가?
작업 초반에는 일종의 고집 같은 것이 있었다. ‘나라도 독립운동가를 널리 알려야지’, ‘그림으로 무언가를 보여줘야지’ 등과 같은 패기와 포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패기보다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독립운동가들을 알리고 싶다는 사명감이 있다. 우리나라의 위대한 항쟁의 역사를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알리고 싶다는 흔들리지 않는 뚝심 하나로 지금껏 걸어왔다.
주환선 작가가 그린 독립운동가 일러스트
현재까지 완성한 작품 중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물론 모든 독립운동가를 좋아하고 존경하지만, 구파 백정기 의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부끄럽지만, 구파 백정기 의사를 작업하기 전까지 그가 어떤 인물인지 전혀 몰랐다. 효창공원 3의사의 묘 중 하나가 그의 묘라는 것도 작업을 시작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이는 교과서나 일상에서 그의 이름이 크게 불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아나키스트 계열의 인물이라 잘 알려지지 않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일대기를 살펴보면 그 누구보다 맹렬히 항거했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고, 그의 사진을 보면 특유의 강인함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작가로서 작품의 비주얼적인 면에서나 스토리에서나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앞으로의 계획이나궁극적인 목표가 궁금하다.
현재는 유화보다는 일러스트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내년에 가족과 함께 미국에 갈 예정인데, 그곳에서도 꾸준히 독립운동가 초상화 작업을 이어갈 것이다. 특히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을 도운 미국 선교사들 위주로 전시를 열어볼까 계획 중이다. 최종 목표는 독립운동가 1만 7,644명을 벽면에 가득 채우는 전시회를 여는 것이다. 매일 슬픈 마음으로 독립운동가들을 애도하면서 살 수는 없지만, 더 많이 그리고 더 오래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작품 활동에 매진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