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 독립기념관 1월호
사(史)적인 여행

조금 낯선 제주도 풍경,
대정읍성과
알뜨르비행장


글·사진 박광일 (역사여행작가·여행이야기 대표)

 

겨울이면 따뜻한 곳이 그리워진다. 여러 곳이 있겠지만 대게 첫손에 꼽는 곳이 제주도이다. 

이달에 소개할 여행지 대정읍성과 알뜨르비행장은 ‘여행 정보’에서는 잘 찾아볼 수 없지만, 제주의 역사와 자연의 본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장소이다. 

아이들 겨울방학이나 휴가에 맞춰 제주도를 찾을 때 한 번쯤 들려보면 보다 풍성한 여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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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현을 둘러싼 성, 대정읍성

첫 장소는 제주도 서남부에 있는 ‘대정읍성’ 일대다. 읍성이란 이름에서 육지의 낙안읍성이나 해미읍성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성곽임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대정읍성은 약 5백 미터 정도의 성벽이 남아있는데, 조선시대 태종 때 처음 읍성을 쌓았을 때는 전체 둘레가 약 1천 6백 미터 정도였다고 한다. 여기에 이렇게 큰 규모의 읍성을 쌓은 이유는 대정현이 제주도의 중심이 되는 마을 가운데 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현재 제주도는 북쪽의 제주시와 남쪽의 서귀포시로 두 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지금과는 달랐다. 대체로 지금의 제주시는 제주목으로, 지금의 서귀포시는 동쪽의 정의현·서쪽의 대정현으로 총 세 개 행정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 대정현을 둘러싼 성이 바로 대정읍성이다. 이처럼 대정현은 조선시대의 제주 3대 고을 가운데 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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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읍성 성곽(좌), 대정읍성 향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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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현에서만 볼 수 있는 돌하르방

제주목·정의현과 더불어 대정현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돌하르방 이다. 지금은 여러 곳에 흩어져 있지만 대정읍성 동문 터에 가면 4구의 돌하르방이 있다. 여기 돌하르방은 널리 알려진 것과 다른 모습이라 진짜인지 의심하게 된다. 키는 작고 얼굴은 둥글둥글한 것이 권위감보다는 친근감을 준다. 원래 제주도의 돌하르방은 제주읍성·정의읍성·대정읍성 세 읍성의 수호신 역할을 하던 것으로 성문 앞에 세웠는데 동네마다 모습이 다르다. 보통 우리에게 익숙한 키가 크고 우락부락한 모습을 한 돌하르방은 제주목, 곧 제주읍성의 돌하르방이다. 그러므로 역사 유물로서 돌하르방의 구경을 하기 위해 대정읍성을 찾는 것만으로도 보람은 있다.


대정읍성 주소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추사로38번길  19-26


추사 김정희 유배지, 추사관

대정읍성을 찾는 진짜 목적은 ‘추사관’으로 부르는 곳을 가기 위해서다. 이곳은 조선시대 학자이며 명필로 유명한 김정희의 일생과 업적을 살필 수 있는 기념관이며 박물관이다. 김정희는 청의 여러 학자와 학문을 논하면서 명성이 높았지만, 정치 다툼에 연루되며 제주도로 귀양을 오게 되었다. 이때 제주도의 세 곳에서 머물렀는데, 처음 유배를 와서 머물렀던 곳이 지금 제주 추사관이 있는 곳이다. 유배는 당사자에게는 고통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지금이야 여행의 목적으로 제주도를 찾고, 그것을 SNS에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부러움을 사지만 예전에는 달랐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졌고, 기후도 물도 달라서 생활하기 힘든 곳이었다. 그러한 귀양살이 속에서 유일하게 넉넉한 것은 시간뿐이었다. 김정희는 그 고난의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성취해냈다. 바로 〈추사체〉이다. 〈추사체〉는 김정희가 제주도에 머물던 9년 사이에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이 시기에 또 하나의 명작을 완성하니, 그 유명한 〈세한도〉이다. 이렇듯 제주 추사관은 김정희의 삶과 작품을 조명하기 위해 생겨난 기념관 겸 박물관이다. 한편 제주 추사관은 조금은 특별한 구조로 지어졌다. 지상은 조그마한 창고처럼 지었으며 지하를 넓게 박물관으로 조성하였다. 이러한 구조의 배경은 바로 〈세한도〉 그림에 나오는 자그마한 서재를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주 추사관은 멀리서 보면 그저 평범한 창고 건물처럼 보이기도 한다.〈세한도〉의 ‘세한’은 ‘날씨가 차가워진 뒤에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라는 뜻이다. 보통 어떤 사람이 승승장구할 때는 주변에 사람이 많은 듯 보이지만, 막상 어려운 때를 당하면 주변 사람들이 사라지고 때로는 아무도 없을 때가 있다. 그러므로 자신이 어려울 때 옆에서 도와주는 친구는 한겨울의 소나무와 잣나무 같은 존재이다. 김정희에게 그런 사람이 몇 명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 명이 제자인 역관 이상적이었다. 이상적은 해마다 스승을 위해 중국의 귀한 책을 구해다 주었다. 여기에 보답하고자 김정희가 제자에게 그려준 것이 바로 〈세한도〉이다. 별다른 배경도 없는 곳에 자그마한 서재가 있고, 그 옆에 제주의 곰솔, 그리고 노송이 있는 단아한 그림이다. 이상적은 스승에게 이 그림을 받은 뒤, 청으로 가서 유명 학자 16명에게 그림에 대한 감상을 시와 글로 받았다. 여기에 한국 학자들이 또 시와 글을 붙인 〈세한도〉는 한국과 중국 학자가 교류한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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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유배지(좌), 추사관 내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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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도〉의 담긴 사연

〈세한도〉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며 일제강점기에 청과 한국의 근대 학문을 연구하던 경성제국대 일본인 교수 후지츠카 치카시가 소장하게 되었다. 1944년 후지츠카는 〈세한도〉 등을 들고 일본으로 돌아갔고, 이때 한국인 서예가 손재형은 일본으로 건너가 후지츠카에게 〈세한도〉는 한국에 남겨두어야 할 보물이라며 설득했다. 결국 후지츠카는 아무런 대가 없이 〈세한도〉를 손재형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지금 제주 추사관에는 그 영인본이, 진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전시되고 있다. 어쩌면 하나의 문화재일 뿐인 〈세한도〉에는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을 잇는 사연이 담겨있다. 


추사관 주소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추사로 44


문의

064-710-6865

* 매주 월요일 휴무


일제강점기의 상흔,알뜨르비행장

추사관 다음 살펴볼 장소는 대정의 또 다른 공간인 알뜨르비행장이다. 알뜨르는 제주 말로 ‘아래 벌판’이란 뜻이다. 태평양이 훤히 보이는 제주도에서도 보기 드문 넓은 공간이다. 과거 일제는 이 벌판에 비행장을 만들었다. 20만 평 규모로 1936년 1차 완성을 하고, 다시 1937년 이후 2차 확장공사를 해서 80만 평에 이르렀다. 일제가 이곳에 비행장을 만든 이유는 일본 규슈 지역에서 중국 난징 일대를 비행기로 폭격할 때 중간에 거쳐서 갈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즉 평화로운 섬 제주에 전쟁 시설을 만든 것이다. 비행장에는 20개의 격납고를 건설했고, 지금도 19개가 남아있다. 또한 지하에 만든 벙커 시설도 있으며 인근에는 대공포 기지의 흔적도 볼 수 있다. 알뜨르비행장에서는 전쟁을 대비했던 일제강점기의 낯선 제주도를 만나게 된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제주도 사람의 희생이 있었을 것이니 그런 부분도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멀리 산방산 앞에 점점이 들어선 격납고를 보면 무언가 과거의 전쟁 폐허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알뜨르비행장을 통해 제주도의 일제강점기 역사로 들어갈 수 있어, 이곳은 한 시대로 들어가는 역사의 관문 역할을 한다. 지금 알뜨르비행장의 대부분 영역은 밭으로 쓰이고 있다. 농작물이 자라는 땅에서 격납고는 창고가 되었다. 흥미로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역사 속 전쟁, 그리고 수탈의 역사를 살피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러한 역사의 변화를 만들기 위한 힘을 얻기 위해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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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뜨르비행장 전경


알뜨르비행장 주소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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