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한 발걸음
甲 상사, 乙 부하의 궤도를 넘어서

글 이현수 일상심리 전문작가, 자유기고가
甲 상사, 乙 부하의 궤도를 넘어서
“도통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어.”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박 부장은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김 사원만 보면 혀를 끌끌 찬다. 상사의 지시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것은 물론, 가져오는 결과물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아 늘 지적이 잇따른다. 김 사원 역시 속 끓기는 매한가지. 오늘도 퇴근 후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상사 때문에 일 못하겠다”고 속상함을 토로한다.
하루 24시간 중 3분의 1 이상을 직장에서 보내는 현대인들에게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무시할 수 없는 고통이다. 이번 주제는 직장 내 상하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해결방안이다.
갈등 빚는 수직적 관계는 그만, 수평적 관계의 필요성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6 사회조사’ 결과, 가정·직장·학교 등 일상생활 가운데 직장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73.3%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3년부터는 업무와 연관된 스트레스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가 산업재해에 포함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직장 내 갈등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이 갈 것이다. 특히 최근 대한상공회의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직장 내 대인관계 갈등의 원인으로 ‘상명하복의 경직된 의사소통 체계’가 1순위로 꼽혔다.
수평적인 직장문화가 대두된 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위의 조사결과에서 알 수 있듯 여전히 수직적인 직장문화를 유지하는 기업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수평적인 직장문화가 필요한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앞서 밝힌 직장 내 갈등의 해결이다.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이를 위해 직장 내 수직적인 호칭을 없애는 기업이 늘어나는 추세다. 전 직원이 매니저, 프로 등 통일적인 호칭을 쓰거나, 아예 호칭을 없애버리고 이름 뒤에 ‘님’을 붙이기도 한다. 효과는 아주 긍정적이다. 취업 포털 잡코리아의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직장인 10명 중 6명은 수평적 호칭제도가 조직문화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둘째는 산업체계 변화에 따른 적응이다. 과거에는 효율적인 관리가 필요한 제조업이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창의성과 전문성이 필요한 산업분야를 중심으로 산업체계로 바뀌고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상명하복의 수직적인 구조가 아닌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는 수평적인 구조가 필요하다.
셋째는 위기상황에 대한 신속한 대응이다. 의료계를 예로 들어보자. 조지프 핼리넌의 저서 『우리는 왜 실수를 하는가』에 따르면,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국에서는 마취의의 실수로 환자가 사망하는 사례가 빈번했다고 한다. 이는 당시 간호사 등 주변 의료진이 의사의 ‘실수를 지적’하는 것을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 함부로 말할 수 없던 탓이었다. 이후 의료계가 의사의 권위를 적극 내려놓게 되자, 이전보다 마취사고 사망자가 무려 40배나 줄어들었다.
이처럼 경직된 조직문화는 위기상황 발생 시 대처가 늦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더욱이 갈수록 환경이 급변하는 현대사회에는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수평적인 구조가 요구된다.
직장 내 상하관계 갈등을 해결할 행동지침
당장 회사 구조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회사구성원 개인 차원의 노력으로도 충분히 상하관계에서 비롯되는 갈등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상사와 부하직원 각각의 구체적인 행동요령을 알아보자.
상사: ‘변혁적 리더십’으로 이끌자
최근 많은 기업이 직급을 축소하고 호칭을 수평적으로 조율했지만, 이중에는 큰 효과를 보지 못한 곳도 있고 심지어 기존 방식으로 되돌아간 곳도 있다. 호칭도 중요하지만, 상사가 부하직원들에게 존중과 자율성을 부여하고 소통하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더 필요하다.
중세시대 전설적 군주 아서 왕의 원탁회의 방식을 추천한다. 둥글게 둘러앉으면 상석(上席)의 개념이 사라지게 되는데, 이러한 작은 변화로도 원활한 대화에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아서 왕은 자신이 주축이 되어 회의를 이끌어가기보다는 주변의 참여를 독려했다. 이는 ‘변혁적 리더십’으로도 불리는데, 적절한 결론을 알고 있더라도 이를 먼저 밝히지 않고 구성원들이 생각한 바를 자유롭게 이야기하도록 두는 것이다. 이후 결론이 취합되면 의견을 내놓은 사람에게 성과에 대한 공로를 돌리고 자신은 한발 물러선다. 이는 언뜻 쉬워 보이지만, 자신에게 뻔히 보이는 답을 부하직원들이 어렵게 찾아가는 상황을 보고도 충고를 삼키기란 어렵다. 핵심은 답을 말하고 싶은 충동을 참는 데 있다.
부하직원: 할 말은 하되 방식을 바꾸자
수평적인 조직문화로 변화를 꾀하기 위해서는 부하직원 역시 ‘할 말은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직장 내 문화가 권위주의적이고 상명하복식이라면?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오늘 당장 시행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위계질서가 중시되는 문화 안에서도 내 의견을 전달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대놓고 “팀장님,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하고 내뱉는다면 이것이 야기하는 갈등 및 위험 부담이 본인에게 곧장 돌아올 것이다.
이럴 땐 그 자리에서 곧장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기보단 시간을 두고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권위를 강조하는 상사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면, ‘상사 관찰 일기’를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시간을 두고 천천히 파악하자. 상사의 행동 양식을 관찰해 이를 기록함으로써 그가 어떤 부분에서 자신의 권위를 인정받고 싶어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부하직원의 의견을 수용하는지 알아내고 적절한 때와 상황에 맞춰 의견을 내놓자.
회사구성원 간 관계가 원활해야 기업도 발전한다. 상사든, 부하직원이든 직장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동료’라는 이름으로 묶인다. 조금만 참을성을 갖고 동료의 말에 귀 기울여보자. 분명 갈등을 해결할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이현수
일상심리 전문작가 겸 자유기고가. 매일경제·고용노동부·한국무역보험공사·서울신용보증재단·삼성생명·현대모비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문가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