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답을 찾다

세상사는 모두 남녀의 협력으로 이루어진다

세상사는 모두 남녀의 협력으로 이루어진다

글 이성주 역사칼럼니스트


세상사는 모두 남녀의 협력으로 이루어진다


세상이 살기 어려워졌는지 ‘혐오’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특히 남녀 사이에서 기인하는 혐오는 일상이 된 듯하다. 한쪽에선 페미니즘을 외치며 양성평등을 말하고, 또 반대편에선 여성에 대한 과도한 혜택 덕분에 남성들이 역차별을 당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어떤 게 진실일까?



성별을 뛰어넘은 독립운동가
“조선 사람으로서 독립운동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오. 남자가 활동하는데, 여자가 못 할 이유가 있소?”
한말 여성에 대한 교육이라곤 거의 전무하던 시절, 신여성으로서 당당히 독립운동사에 이름을 올린 독립운동의 대모 김마리아. 그녀의 독립운동은 남녀차별에 맞선 싸움이자, 남녀가 함께 나아갈 길을 도모하는 투쟁이었다.

▲1892년 6월 18일 황해도 장연군 출생 ▲1910년 정신여학교 수석 졸업 ▲1916년 동경여자학원 대학부 영문과 입학 ▲2·8독립선언을 준비했으나, 여학생의 명단은 빠짐. 이에 여성의 항일독립운동 참여에 대해 고민 ▲1919년 2월경 귀국하여 여성들의 궐기 요청. 이후 일본경찰에 체포 ▲이후 6개월간의 고문을 당한 후 출감 ▲1919년 9월 20여 명의 여성 지도자들을 모아 대한민국애국부인회 결성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자금 지원 ▲1923년 미국 유학. 10여 년간 사회학, 교육행정학 등 공부. 유학 중에도 근화회(槿花會)를 조직하는 등 민족정신을 고취시킴 ▲1932년 귀국 이후 교육활동 ▲1944년 3월 52세 일기로 세상을 떠남

2·8독립운동 당시 김마리아도 참여했지만, 정작 조선청년독립단 대표 11명의 이름 중 여성의 이름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녀의 고민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독립운동에서 여성의 역할론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하게 되었다. 김마리아는 여성들의 참여를 더 확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1919년 2월 기모노 허리띠에 독립선언문을 숨긴 채 귀국하여 지방을 순회하며 독립운동을 고취하는 데 앞장섰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3·1 운동이 시작되면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는 위기에 처하고 만다.
“일본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고문했는지, 물과 고춧가루를 코에 넣고 가마에 말아서 때리고 머리를 못 쓰게 해야 이런 운동을 안 한다고 시멘트 바닥에 구둣발로 머리를 차고….”
모진 고문 속에서도 민족 독립에 대한 의지는 꺾일 줄 몰랐다. 독립을 향한 열망은 더욱 불타오르고 행동은 강철같이 단단해졌다. “김마리아 같은 여성 동지가 열 명만 있었던들 대한은 독립이 됐을 것이다.” 안창호가 남긴 이 말은 여느 남성 못지않았던 독립운동가 김마리아의 기개를 잘 보여준다.


남녀가 함께 모색하는 성공의 길
김마리아는 말했다. “남자가 활동하는데, 여자가 못 할 이유가 있소?”
독립운동이란 대의 앞에 남녀 구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여성의 활동이 자유롭지 않았던 당시 사회 분위기를 본다면, 시대를 앞서나간 파격적인 주장이다. 김마리아는 여성도 남성 못지않게 독립에 대한 강한 의지와 실천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여성계의 희망이었다. 일본 경찰의 모진 고문과 회유 앞에서도 김마리아는 굳은 결기를 잃지 않았다. 지금으로 보자면 페미니스트의 사표(師表)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김마리아는 재판관 앞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세상이란 모두 남녀가 협력해야만 성공하는 것이다. 좋은 가정은 부부가 협력해서 만들어지고, 좋은 나라 또한 남녀가 협력하는 것만으로도 만들어지는 것이다.”
세상은 남자 혼자만으로 살아갈 수도, 여자들만으로 살아갈 수도 없다. 하물며 성패가 달린 일에서 남녀 구분이 가당키나 한 말일까? 좋은 가정은 부부가 협력해서 만들어지듯이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남녀 간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주장.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의 우리 세대들이 잊어버린 말일 수도 있다.
페미니즘(Feminism)의 사전적 의미는 여성이 남성과 같은 권리와 기회를 누려야 한다는 믿음과 목표 혹은 이를 위한 투쟁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100여 년 전 김마리아의 삶은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아닌가. 남자가 하는 일이라면 여자도 못 할 일은 없다는 당찬 포부. 나아가 더 큰 성공을 위해서는 남녀가 협력해야 가능하다는 선언까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는 남녀가 따로 없다는 말의 어간에는 여성의 능력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말이 숨어 있다. 그리해야 남녀 간의 평등이 이루어지고 진정한 의미의 ‘협력’이 이루어지리라 믿은 것이다. 김마리아의 말처럼 세상은 남자만으로, 혹은 여자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곳이니 말이다.

         


        

이성주

시나리오 작가 겸 역사칼럼니스트.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글쓰기를 목표로 『조선의 민낯』, 『왕들의 부부싸움』과 같은 역사서를 출간한 바 있다. 최근에는 국제정치와 관련된 연구 및 집필에 열중하고 있다.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 시리즈 1, 2, 3권을 출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