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한 발걸음
폭력을 키우는 방관자, 침묵은 ‘그만’

글 이현수 일상심리 전문작가, 자유기고가
폭력을 키우는 방관자, 침묵은 ‘그만’
“내 딸을 죽인 사람은 바로 우리 반에 있습니다.”
사고로 딸을 잃은 여교사는 봄방학을 앞둔 종업식 날, 아이들 앞에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꺼낸다. 자신의 아이가 학생들에게 살해당했다는 것. 범인은 13살 중학생으로 형사적 처벌 대상이 아니었다. 그녀는 결국 사적 복수를 결의한다.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 『고백』의 내용이다. 잔인한 진실에 근접해가면서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인간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한다. 범인들에게 가하는 복수의 전개도 흥미롭지만, 날로 흉악해지는 청소년 범죄와 이로 인해 상처 입은 사람들의 고통을 반영한 점이 인상적이다.
최근 이와 맥락을 같이하는 사건이 우리나라에서 터졌다. 부산 여중생 집단 폭행 사건이다. 폭행은 부산 사상구 엄궁동의 인적이 드문 공장 인근에서 벌어졌다. 가해자가 폭행 당시 피해 여중생의 처참한 모습을 찍은 사진을 자랑스럽게 선배에게 전송한 것이 인터넷상에 퍼지면서 사건은 세상에 알려졌다. 폭행에 가담한 인원은 총 5명. 철골 자재·소주병·벽돌·쇠파이프·의자 등으로 피해자를 무참히 가격한 사실은 사회에 큰 충격과 분노를 안겼다.
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교의 2016년 학교폭력 심의 건수는 1만9천500여 건이었다. 이는 2015년의 1만7천749건보다 증가한 수치로, 학생 1천 명당 학교폭력 심의 건수는 2015년 2.72건에서 2016년 3.09건으로 13%나 증가한 상태다.
방관적 태도와 공감 부족이 키운 학교폭력
교내 선후배 간 폭력을 비롯해 학교폭력이 발생하는 주요 이유는 바로 폭력에 침묵하기 때문이다. 일명 ‘방관자 효과’다. 이는 1964년 뉴욕 퀸스 지역 주택가에서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강도에게 살해당한 사건에서 유래했다. 제노비스는 강도에게 쫓기는 35분 동안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12명의 목격자는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고, 결국 그녀는 강도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주변에 사람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을 방관자 효과라고 한다. 학교폭력 역시 사람이 많은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지만,1) 학생들은 이를 보고도 못 본체하고 침묵하여 폭력에 간접적으로 가담한다.
또 하나는 공감능력의 결여다. 최근 성신여대 김동희 교수팀은 서울의 한 중학교 학생 416명을 분석한 결과, 학교폭력 현장의 방관자를 ‘괴롭힘에 가담하는 학생’, ‘아웃사이더’, ‘피해자를 옹호하는 학생’의 3가지 유형으로 나눴다. 이 중에서 공감능력이 낮을수록, 선생님과 관계가 안 좋을수록, 괴롭힘에 대한 걱정이 많을수록 폭력에 가담할 확률이 높았다. 반면, 피해자를 옹호하는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자존심·공감능력·사회문제 해결능력이 높게 나타났다.
해결책1. 개인: ‘핑크셔츠데이’를 본받자
학교폭력을 멈출 중심 키워드는 방관자로 정의되는 주변 학생들에게 있다. 본인은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며 단순히 구경만 한다고 해도 가해자의 폭력을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이 되고, 상황을 악화시키는 데 기여한다. 또한 방관자 역시 정신적인 피해를 받는다. 폭력 현장을 목격하고도 애써 무시하는 경우, 우울·무력감·불안·두려움·죄책감 등 부정적인 심리 영향을 받으며, 자기효능감과 대인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2) 주변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결코 나와 상관없는 일이 아니며,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폭력을 멈추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
핑크셔츠데이(Pink Shirt Day)를 참고해 보자. 캐나다에서 한 남학생은 분홍색 티셔츠를 입고 등교했는데, ‘동성애자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했다. 이를 본 다른 학생은 두고 보지 않았다. 다음날 분홍색 티셔츠를 입고 등교한 것은 물론, 분홍색 티셔츠 50벌을 사서 친구들에게 나눠주며 입으라고 권유하는 등 따돌림을 막기 위해 ‘행동’했다. 이 일을 계기로 캐나다 전역은 신학기가 시작될 무렵 핑크셔츠데이를 지정해 교사와 학생은 물론 유명인, 총리에 이르기까지 하루 종일 핑크셔츠를 입으며 학교폭력 예방에 나서고 있다.
해결책 2. 학교 및 제도: 방관자 중심의 예방 교육
현재 우리나라의 학교폭력 대처는 제도적 개선이 절실한 상황이다. 학교폭력 피해자 심리치료 지원은 물론, 중립적인 외부 전문가의 활발한 개입 역시 미비한 실정. 가장 우선해야 하는 것은 방관자 중심의 폭력 예방 교육의 확대다.
핀란드는 2011년 ‘키바 코울루(KiVa Koulu, 좋은 학교)’ 프로그램으로 학교폭력을 21~63%나 감소시켰다. 1990년대 심각한 학교폭력으로 골머리를 앓았던 핀란드는 2006년부터 2009년까지 현장 사례 분석을 통해 ‘방관자가 없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후 토의 수업·비디오 영상수업·소규모 그룹 활동·컴퓨터 게임 등으로 학생들이 흥미를 느끼며 학교폭력 예방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이끌었다. 집단따돌림으로 유명했던 영국 역시 방관자에 초점을 둔 교육 프로그램으로 학교폭력이 크게 줄었다. 미국은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학교폭력 예방 교육을 의무화한 상태로, 폭력에 직면했을 때 이에 대응할 수 있도록 체험적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 노르웨이는 학교폭력을 당하거나 목격할 경우, “그만해(Stop)”라고 외치도록 가르친다. 이 역시 학교폭력 감소 효과가 입증돼, 국내에서도 실시된 바 있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는 말은 더 이상 가볍지 않다. 최근 트라우마치유센터 ‘사람마음’이 내담자 100명을 조사했는데, 그중 청소년기에 당한 학교폭력으로 방문한 이들의 상당수가 30~40대에 해당됐다.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학교폭력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내 일이 아니라고 모른척하기엔 피해자의 상처가 너무도 깊고 오래 간다. 폭력 앞에 침묵을 깨고 분연히 나설 수 있어야 피해자의 고통을 줄이고, 더불어 나 자신의 고통도 줄일 수 있는 길임을 기억해야 한다.
1) 학교폭력 피해 장소는 교실 안, 복도, 운동장 등 주로 학교 안(67.1%)으로 조사되었다. (2017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교육부)
2) 학교폭력에 대한 청소년의 방관적 태도가 자기효능감과 대인관계에 미치는 영향(청소년복지연구 제14권 제4호, 2012년)
이현수
일상심리 전문작가 겸 자유기고가. 매일경제·고용노동부·한국무역보험공사·서울신용보증재단·삼성생명·현대모비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문가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