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G와 적당히 타협하는 맛
<한우 육회>
글 _ 황인철 산부인과 과장진료과목 _ 산전관리, 고위험임신, 정밀초음파
“어머니, 고기의 누린 맛을 없애려면 어떻게 삶아야 해요?”
요리 방송을 앞두고 이것저것 준비하던 아들이 뜬금없이 날린 질문에 조금 당황하셨는지 어머니는 눈만 깜빡이고 아무 말씀 없으시다가 이내 핀잔 어린 목소리로 답을 하신다.
“고기의 누린 맛을 왜 없애? 누린 맛이 나야 고기이고, 비린 맛이 나야 생선이다. 요즘 젊은것들은 자꾸 이 맛을 없앤다고 하는데 그럼 음식 맛이 산으로 가. 다 똑같지. 달고 짜고 맵고… 그게 요리야? 장난이지!”
강한 충격에 머리가 잠시 멍해진다. 고기는 누린 맛이 나야 고기이고, 생선은 비려야 생선이다? 장금이의 대사가 떠올리는 어머니 말씀을 되새기고 있는데 잔소리 하나가 더해진다.
“고기랑 생선은 싱싱하면 날것으로도 먹는데 양념까지 하면 맛없는 게 반칙이지. 뭘 자꾸 좋은 재료에 입히고 간하고… 다 사치다 사치야.”
그렇다. 사실 고기와 생선은 날것으로도 먹지 않던가. 그럴 때 누린 맛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육즙과 육향을 느끼지 않는가? 왜 이걸 몰랐는지, 고개가 숙여지는 순간이었다.
원재료 맛을 살리는 요리 철학이 탄생한 따끔한 가르침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음식 에피소드다. 당시 한참 요리에 재미를 느껴 방송에 나오고, 책도 내고, 의사라는 직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외부 활동에 푹 빠져있던 나에게 ‘요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어머니의 따끔한 가르침이라고 할까? 이 에피소드 이후 요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고, 음식의 맛을 내는 방식도 많이 바뀌었다. 풀 하나를 요리하더라도 풀 맛이 나야 하고, 고기 한 점을 요리해도 육향이 나야 하는 것이 아마 내 요리의 철학이라고 할까? 그러다 보니 차별화된 나만의 음식 맛도 찾게 되었고, 철학도 갖고 팬도 생기게 된 결정적인 장면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달달하고 적당한 식감을 주면서 호불호가 적은 ‘육회’
고기 이야기를 더 해보자면 숯불에 구워 먹는 것이 가장 고기 맛이 살아난다. 육사시미 같은 날것을 소스에 찍어 먹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신선한 고기를 구하기가 힘들고 익히지 않은 고기는 호불호가 갈리는 식감이라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지는 못한다. 하지만 육회는 조금 다르다. 달곰한 고기 맛에 적당한 식감, 그리고 육향까지 남녀노소 모두에게 만족을 주는 훌륭한 요리가 아닐까 싶다. 최근엔 유명 외국 음식점에서도 소고기 타르타르라고 하여 한우 요리의 외국 버전이 나오는 곳이 있는 걸 보면 아마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사랑받는 요리임에는 틀림이 없다.
육회 감칠맛의 비결은 ‘맛소금’ 한 숟갈
그런데 육회의 난제가 감칠맛을 끌어올려야 하는데 아무리 해도 식당에서 먹던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잘못하면 정말 날고기를 설탕에 찍어 먹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날은 물컹물컹한 식감이 영 기분 나쁘다. 핏물이라도 잘못 빼는 날에는 뻘건 물이 육회에 흥건하니 이럴 때는 그야말로 입맛이 뚝 떨어진다. 사실 여기에 MSG 딱 반 스푼이면 그 모든 게 해결되긴 하는데 요리 인생 15년에 MSG는 아직 용서가 안 된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맛소금이다. 소금의 짠맛은 육향과 설탕의 단맛을 끌어올리고 적당히 섞여 있는 MSG는 그야말로 감칠맛을 폭발시킨다. 또 MSG가 아닌 맛소금을 넣었다고 생각하니 양심과 어느 정도 타협한 것 같기도 하고, MSG를 전혀 안 쓴다는 자신감 넘치는 어머니의 집밥 맛의 원천이 맛소금인 걸 알게 된 이후로는 거부감도 없어졌다. 어디에 내어놓아도 욕 안 먹고, 심지어 너무 맛있다는 칭찬의 말을 듣기 위해서는 맛소금 한 숟갈이면 충분하다.
재료
한우 육회용 150g, 배 반 개, 미나리 등 채소, 달걀노른자 1개, 설탕 2T, 마늘가루 1T, 맛소금 1T, 참기름 1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