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 독립기념관 7월호
사(史)적인 여행

휴가지에서 만나는 역사

강원도 강릉

 

글·사진 박광일 (역사여행작가·여행이야기 대표)

 

강릉이라 하면, 시원한 바다와 푸르른 풍경 덕에 대표적인 ‘여름철 휴가지’로 꼽힌다. 

이 뿐만 아니라 강릉은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깊고 다양한 역사를 품고 있는 고장으로, 굵직한 역사를 간직한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올여름, 탁 트인 바닷길을 따라 강원도 강릉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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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좌), 경포생태저류지(우)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태어난, 오죽헌

첫 번째로 살펴볼 곳은 강릉의 대표적인 사적지 ‘오죽헌’이다. 오죽헌은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태어난 곳으로, 조선시대 오래된 살림집 모습이 남아있는 곳이다. 이 주변에는 검은 대나무인 ‘오죽’이 있어, 그 이름의 내력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오죽헌은 원래 이이의 이종사촌인 권화의 호(號)이다. 조선 전기만 하더라도 부모는 재산을 딸에게 물려주기도 했는데, 이이가 태어날 때 이 집은 외할머니인 용인 이씨 소유였다. 이후 용인 이씨는 셋째 딸인 신사임당에게는 서울 집을, 넷째 딸에게는 강릉 집을 물려주었는데, 넷째 사위가 권처균의 아버지 권화이다. 그리고 권처균이 이 집을 물려받았을 때, 아버지에서 아들로 재산을 상속하는 풍습으로 바뀌었다. 이때 권처균은 집 주위에 검은 대나무가 무성한 것을 보고 자신의 호를 오죽헌(烏竹軒)이라 지었고, 이것이 후에 집 이름이 되었다.그러므로 신사임당과 이이가 태어났던 시절, 이 집의 이름은 오죽헌이 아니었다. 이처럼 오죽헌은 신사임당과 이이의 내력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자, 동시에 조선시대 상속제도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곳이다. 더불어 조선전기 주택과 구조적 가치를 살펴볼 수 있는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오죽헌은 원래 별당 건물이었는데, 최근에는 오죽헌 옆에 사랑채와 안채를 복원하였다. 또한 이 주위에는 이이를 기리기 위한 사당인 문성사와 시립박물관 등도 있어 강릉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한눈에 살펴보기 좋다. 


Tip 1. 메타세쿼이아 나무를 따라 펼쳐진 산책로

오죽헌을 나와 큰 도로를 건너면 넓은 들판이 펼쳐지는데, 바로 경포생태저류지이다. 특히 이곳에는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양옆으로 줄지어 서 있는 길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도보로 30~40분 소요되는 이 길 끝에는 경포호가 있고, 길 끝에서 뒤를 돌아보면 멀리 백두대간의 거창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경포 일대 자연의 아름다움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는 이곳에서 평소 느끼지 못했던 여유로움을 만끽해 보자. 


오죽헌 주소 & 관람시간 & 문의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율곡로 3139번길 24  |  오전 9시~오후 6시  |  033-660-3301~3308

* 연중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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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3·1운동기념공원(좌), 가시연습지(우)

그날의 뜨거웠던 열기를 되새기며, 강릉3·1운동기념공원

이번에 살펴볼 곳은 경포호에 자리한 ‘강릉3·1운동기념공원’이다. 이곳은 1919년 강릉지역에서 일어난 3·1운동을 기념하기 위한 공원이다. 

강릉에서는 1919년 여러 번의 만세운동이 펼쳐졌다. 이 지역에서 만세운동이 처음 일어난 날은 장날인 4월 2일이었다. 강릉감리교회 신도들과 강릉고보학생, 유도진흥동지회와 강릉청년회가 주도하였으나 아쉽게도 이들의 움직임이 일본 경찰에게 사전에 발각되었다. 이 같은 이유로 시위는 예상보다 작은 규모로 진행되었다. 장날이었던 것을 고려해 보면, 100여 명이 나선 이날의 시위는 소규모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만세운동 이후 4일과 5일, 7일과 8일 남대천과 강릉시내 등 강릉 여러 곳에서 큰 규모의 시위가 일어났다. 처음부터 조직적으로 일어난 만세운동은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강릉지역 곳곳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강릉3·1운동기념공원에는 이때 참여했던 10여 명의 독립운동가 흉상이 세워져 있다. 이들의 이름과 활동 기록을 살펴보며, 잠시 그날의 뜨거웠던 열기를 상상해 보자.


Tip 2. 한여름에만 볼 수 있는 가시연꽃

경포호 옆으로 가시연습지가 조성되어 있다. 멸종위기종이기도 했던 가시연은 잎 모양이 가시가 돋은 것처럼 울퉁불퉁해 독특하다. 경포호 옆 습지를 조성하는 가운데, 진흙 속에 잠겨있던 씨앗이 발아가 되어 가시연이 자라기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가시연은 한여름에만 볼 수 있는 꽃이라고 하니, 여름철에 강릉에 들린다면 한번쯤 찾아보기를 바란다. 


강릉3·1운동기념공원 주소 & 관람시간 & 문의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저동 645  |  오전 9시~오후 8시  |  033-660-2018

* 연중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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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허난설헌기념공원(좌), 『난설헌집』(우)

조선의 여성 시인을 기리며, 허균·허난설헌기념공원

경포호에서 작은 개울을 건너 숲으로 들어가면 ‘허균·허난설헌기념공원’이 나온다. 이곳은 조선시대 만들어진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과 최고의 여류 문인으로 인정받는 허난설헌을 기념하기 위한 문학 공원으로, 두 남매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허난설헌은 4남매 중 셋째였다. 위로는 허성과 허봉, 아래로는 허균을 두었다. 허난설헌의 ‘난설헌’은 호로, 이름은 초희, 그리고 자는 경번이다. 초희와 경번은 스스로 지은 이름과 자(이름 대신 친한 사람이 부름)로, 중국 초나라 장왕의 현명한 아내로 이름난 번희와 관련이 있는 이름이다. 초희는 ‘초나라의 번희’, 경번은 ‘번희를 생각한다’는 의미이다. 보통 조선시대 여성이 성씨만 남아있는 것과 달리, 허난설헌은 이름과 자를 스스로 지었다는 점에서 자신감이 넘쳤던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허난설헌은 결혼할 때도 남편을 직접 고르겠다고 고집을 피우기도 했다. 그는 의병장 김성립과 결혼하였는데, 이후 점점 활기를 잃어갔다. 남편과의 관계와 시댁살이가 편치 않았으며, 어린 자식 둘을 병으로 잃은 것이 그 이유였다. 결국 그는 27살 젊은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허난설헌은 고단한 생활 속에도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는 시와 여성의 당당함을 드러낸 시를 쓰기도 했다. 또한 강릉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덕에 그의 시에는 강릉이 종종 등장한다. 그의 작품을 살펴보며 그 속에 등장하는 강릉을 찾아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이다. 


Tip 3. 관동팔경(關東八景) 제1경, 경포대

허균·허난설헌기념공원에 왔으면 가까운 곳에 자리한 경포대를 지나칠 수 없다. 이곳은 경포에 위치한 누각으로 관동팔경 가운데 제1경으로 꼽힌다. 관동팔경은 모두 대관령 동쪽 8곳의 명승지를 뜻한다. 시기에 따라 약간의 변화가 있었으나 지금은 강릉의 경포대를 비롯해 울진의 망양정과 월송정, 삼척의 죽서루, 양양의 낙산사, 고성의 청간정과 삼일포, 통천의 총석정을 가리킨다. 경포대는 고려 충숙왕 때 처음 생겼으며, 조선 중종 때 지금 자리에 누각을 옮겨지었다. 500년이 흐른 만큼 수많은 사람이 경포대를 찾았는데, 그중 명나라 사신이었던 주지번도 있었다. 주지번을 경포대로 안내한 사람은 허난설헌의 동생 허균이었다. 허균은 누이의 시를 모은 『난설헌집』을 주지번에게 선물하였고, 이 시집은 중국에서 발간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일본에서도 시집이 출간되어 인기를 얻었고, 허난설헌은 동아시아의 유명한 시인이 되었다. 


허균·허난설헌기념공원 주소 & 관람시간 & 문의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저동 645  |  오전 9시~오후 8시  |  033-660-2018

* 연중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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