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 독립기념관 7월호
어제와 오늘을 잇는 사람

70년 전,
역사 속에 묻힌 진실을 발굴하다

허철녕 영화감독

 

글 편집실


역사 속에 묻힌 기억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 한반도 전역에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 사건의 유해를 발굴하는 시민 발굴단이다. 

최근 이들의 숭고한 여정을 기록한 영화 <206: 사라지지 않는>이 개봉했다. 

이들은 왜 이토록 치열하며, 허철녕 감독은 왜 이들을 주목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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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철녕 영화감독

<206: 사라지지 않는>, 제목부터 궁금증을 자아낸다.

한국전쟁 정전 7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 당시 자행된 민간인 학살 사건은 여전히 정확한 피해 규모도 희생자 수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들의 시간은 70년 전에 멈춰있다. 이들의 유해를 자발적으로 찾아 나선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 발굴 공동조사단’(이하 시민 발굴단)은 나이도 사는 곳도 직업도 제각각이지만, 오직 하나 공통된 목표가 있다. 인체를 구성하는 206개의 뼈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주는 것이다. <206: 사라지지 않는>은 뼛조각마저 온전하게 찾을 수 없는 학살 희생자들의 비극을 담은 제목이다.


시민 발굴단은 어떻게 유해 발굴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나?

한국전쟁 이전 일제로부터 독립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45년 일제 치하로부터 독립했지만, 분단 정부가 수립되며 이념 갈등이 시작되었다. 분단 상태는 고착화되며, 1948년 제주4·3사건이 발생한다. 1950년 6월 한국전쟁으로 이념 갈등이 심화되며, 국가 간의 싸움을 넘어 국가 내 민간인 학살이 한반도 전역에 자행된다. 1960년 4·19혁명 이후‘양민학살사건 진상조사특별위원회’가 구성되는 등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족들의 노력으로 학살 현장 실태조사에 돌입했지만, 1년 뒤 정부는 한국전쟁유족회를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유해발굴을 중단시킨다. 

오랜 노력 끝에 2005년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하게 된다. 40여 년 만에 민간인 학살 진상 조사와 유해 발굴이 시작되었지만, 5년 만에 해체되고 만다. 이 같은 이유로 2014년 시민 발굴단, 즉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 결성된다. 묵묵히 유해발굴을 이어간 이들의 노력으로 지난 2020년에는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재출범하는 결실을 맺기도 했다. 시민 발굴단의 상당수는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 전직 조사관 출신이며, 대부분 미완의 과제로 남겨두었던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한 책임감으로 비롯되었다. 여기에 유족들과 자원봉사자 등이 자발적으로 합류하여 유해 발굴은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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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6: 사라지지 않는> 스틸컷

이들의 활동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2005년, <밀양, 반가운 손님(2014)> 제작 당시 밀양 송전탑 반대운동을 주도한 故 김말해 할머니(이하 할머니)를 만났다. 당시 90세를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765,000kV의 거대한 송전탑과 맞서 싸운 할머니 투쟁의 시작은 한국전쟁이었다. 할머니의 남편은 한국전쟁 때 보도연맹원으로 몰려 학살당했고, 이로 인해 할머니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을 홀로 감내해야만 했다. 

이후 SNS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민간인 학살터에서 유해발굴을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운명인가 싶었다. 처음 자원봉사자로 발굴단에 합류했을 때, 단원 중 한 분이 내 직업이 영화감독이란 것을 알고 발굴 과정 기록을 요청했다. 영화화까지는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단원분들이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영화화 작업을 시작했다. 


발굴 작업을 함께하며 안타까운 순간을 마주할 때가 많았을 텐데….

시민 발굴단이 공인된 단체라기보다 자발적으로 집결한 결사체에 가까워서 유의미한 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비용과 인력의 한계를 늘 겪는다. 몇 년 전, 경남 진주에서 30구가 넘는 유해가 발굴된 적이 있다. 그런데 발굴 도중 발굴단이 갑자기 터를 파란 천으로 덮는 것이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더 조사하는 게 맞지만, 돈과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 우리의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답하더라. 발굴이 이루어졌음에도 다시 복토(復土) 할 수밖에 없는 과정이 참 안타깝고 가슴 아팠다. 이 현실을 대중들이 꼭 알아야 하지 않나 싶어 끝까지 영화를 완성하고 싶었다.


특별히 기억에 남거나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면?

영화가 4년 동안 담은 6곳의 유해 발굴 현장 가운데, 가장 참혹한 곳은 충남 아산시 배방읍 설화산이었다. 3일 동안 땅을 파도 파도 흔적을 찾기 힘들었는데, 철수하기 직전 유해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유해들의 80% 이상이 여성이었고, 어린이들의 유해도 60구 가까이 나왔다. 특히 이곳에서는 인체 뼈 가운데 부식이 빨리 된다는 늑골, 그것도 어린아이들의 늑골이 다수 출토되었다. 조사 결과, 마지막 순간까지 엄마들이 아이들을 끌어안고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 그 원인으로 분석됐다.

2018년 5월 열린 유해안치식에서 80일간 헌신적으로 발굴 작업을 함께 했지만, 아버지의 유해를 끝내 찾지 못한 유족 김광욱 씨의 눈물과,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정의인지 잘 모르겠다. 아버님의 유해를 찾아드리지 못해 죄송할 따름이다”라고 흐느낀 시민 발굴단을 이끄는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의 말에서 끝나지 않는 비극의 실타래를 푸는 과정은 이념과 명분이 아닌, 피해 유족들의 고통을 보살피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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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6: 사라지지 않는> 스틸컷

밀양 송전탑 투쟁을 다룬 <밀양, 반가운 손님>과 <말해의 사계절>, 그리고 이번 영화까지. 폭력의 역사를 꾸준히 탐구한다.

폭력의 역사를 다루려고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관심사를 다루다 보니 자연스레 그래왔다. 세월호 사건 이후 백상현 교수가 <속지 않는 자들이 방황한다>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그 책의 제목이 딱 나와 시민 발굴단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유해를 발굴하는 과정은 방황의 과정이지만, 거대 권력이 방황하는 이들과 연대하며 은폐한 폭력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발언해 나갈 것이다.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있다면?

<206: 사라지지 않는>은 어떤 비극을 고발하는 영화가 아니라 아픔과 화해하고 치유하는 영화이다. 아픔을 치유하려면 그 아픔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 우선인 것처럼, 그 아픔을 향해 땅을 파고, 또 파서 진실을 발굴해야 한다. 우리는 아픈 과거를 두고 아프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아픔을 치유하고 서로 끌어안아야 한다.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고, 끌어안을 수 있을 때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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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6: 사라지지 않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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