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 독립기념관 3월호
사(史)적인 여행

3·1운동의 흔적과
일제 침탈의 역사를 찾아서

전북 익산

 

글·사진 박광일 (역사여행작가·여행이야기 대표)

 

익산을 걷다 보면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이 어떠한 피해를 보았으며 또 무엇 때문에 일제에 저항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당시 일본인이 운영했던 농장의 모습을 보게 되면, 

그동안 관심을 덜 받았던 농촌에 남은 일제강점기 침탈의 흔적과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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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사지 

일제강점기 교통의 중심지, 익산역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익산은 백제 때 무왕이 미륵사지와 왕궁리에 궁궐을 지으며 유명한 곳이 되었다. 그때는 ‘금마’로 불렀다. 백제 멸망 후 한적한 곳이 된 이곳은 고려 말에 고려 여인으로 원나라 황후가 된 기황후의 외가라 하여 ‘익주’로 높여 불렀으며 여기에서 익산이란 이름이 탄생했다. 이러한 익산에 다시 큰 변화를 일으킨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1899년 군사 개항이다.군산이 개항되자 많은 일본인이 모여들었으며, 곧 군산과 가까운 익산으로 옮겨간 일본인이 생겨났다. 일본인이 모여든 익산은 일제강점기에 큰 변화를 보였으니, 여기에는 철도의 영향이 컸다. 1914년 호남선이 놓이며 ‘익산역’이 처음 등장했다. 대전에서 출발해 목포로 가는 철도인 호남선은 인근에 있는 전주 대신 익산을 지나갔고, 이후 익산에서 출발해 여수까지 가는 전라선이 1937년 완성되었다. 또한 천안에서 익산을 잇는 장항선, 익산에서 군산까지 놓인 호남선 지선으로 일제강점기 익산역은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한국인보다 일본인이 많았던 익산

일제강점기에 전라도 일대의 철도가 익산을 중심으로 발달한 이유 중 하나가 일찍부터 이 지역에 일본인이 많이 살았으며, 특히 일본인 농장주가 많았던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1915년 기준으로 익산 인구를 보면 일본인이 2,053명으로 한국인 1,367명보다 많았다. 아무리 일제강점기라고 해도 일본인이 한국인보다 많은 지역은 극히 드물었다. 나아가 익산에 거주한 일본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엄청난 규모의 농장을 가지고 있었으니, 일본인 농장주의 주장이 영향을 끼쳤다. 실제로 일본인 농장주 다수가 철도 유치를 위해 노력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처럼 익산은 일제강점기 내내 일본인의 영향력이 컸다는 점에서 일본풍 거리가 만들어졌으니 익산역 건너편에서 그 모습의 일부를 찾아볼 수 있다.


익산역 주소 & 문의

전북 익산시 익산대로 153  |  1544-7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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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근대역사관 건물

옛 건물이 들려주는 익산 이야기,익산근대역사관

익산역 건너에 ‘익산 근대역사거리’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이 거리는 ‘영정통’, 일본어로는 ‘사카에마치도리’였다. 번화한 일본 분위기의 거리였는데, 지금은 그 중심에 ‘익산근대역사관’이 있다. 이 건물은 옛 삼산의원 건물로, 굳이 찾으려고 하지 않아도 금방 눈에 띈다. 2층으로 된 이 건물은 창문이 커다란 아치 모양이며 하얀 장식과 붉은 벽돌이 인상적이다. 참고로 옛 삼산의원의 ‘삼산’은 이 병원의 원장이었던 김병수의 호다. 김병수는 군산의 3·1운동, 즉 1919년 3월 5일 군산 장날에 펼쳐진 만세운동을 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군산의 영명학교 졸업생인 김병수는 당시 세브란스 의전 학생이었는데, 민족대표 중 한 명인 이갑성을 통해 3·1운동 소식을 군산에 전하고 독립선언서 95장을 영명학교 교사인 박연세에게 전달하였다. 이후 의사로 활동하던 시절, 익산에 병원을 낸 것이다. 익산근대역사관은 독립운동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 활동하던 공간에서 일제강점기 익산 지역에서 일어난 일제의 수탈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다른 지역의 역사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농장주에 관한 자료는 놀라움을 준다. 수십만 평에서 수백만 평에 이르는 농장의 규모는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익산근대역사관 주소 & 문의 & 이용안내

전북 익산시 중앙로 12-151  |  0507-1349-3545  |  평 일/주말 10시~18시  |  무료 

*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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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익옥수리조합건물

일제 수탈 도구로 이용된 수리시설,익옥수리조합

익산근대역사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익옥수리조합’ 사무실도 살펴보자. 붉은 벽돌로 지은 2층 건물로 지금은 익산 지역의 문화유산과 관련된 업무를 보는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수리조합’은 우리에게 비교적 낯선 내용이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역사이다. 일제강점기 여러 수리조합의 조합원이 바로 일본인 농장주였다. 일본인들은 비교적 저렴한 한국의 토지를 사들여 대규모의 농장을 만들고자 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안정적인 농사를 짓기 위한 대규모 수리시설이 필요했다.당시 이 지역에서 가장 크게 펼쳐진 수리시설 관련 건축물은 ‘운암제’라는 댐이다. 또한 유명한 수리시설 ‘황등제’도 있다. 이들 수리시설은 규모가 크다는 점에서 조선총독부나 혹은 관공서가 지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수리조합이 주도해서 지은 것이다. 여러 수리조합 가운데 하나인 익옥수리조합에서 쓰던 건물이 남아 있는 것이다. 1920년에 생긴 익옥수리조합을 주도한 인물은 일본인 후지이 간타로다. 이 사람은 일명 ‘수리왕’으로 알려지기도 했는데 앞에서 살펴본 황등제를 비롯해 대아저수지 등 여러 관개시설 공사를 주도했다. 참고로 익옥수리조합의 일본인농장주들이 소유한 토지를 합치면 모두 3천 만 평에 이르렀다.


수리시설은 과연 한국인 농민에게 도움이 됐을까?

수리조합에 소속된 농장에서 농사를 짓는 한국인 농민들은 수리시설에 들어간 비용을 세금처럼 내야 했다. 그러므로 수리조합의 이익은 농장주에게 돌아갔지만 피해나 비용 부담은 한국인 농민에게 돌아갔다. 더 나아가 수리조합 수리시설을 만드는 과정에서 강이나 하천을 막아서 쓰다 보니 원래 있던 강에서 물을 대서 쓰던 다른 한국 농민에게 피해를 주기도 했다.


익옥수리조합 주소

전북 익산시 평동로1길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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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독립운동 4·4만세 기념공원(좌), 오하시 농장의 사무실 건물(우)

익산 3·1운동의 흔적, 4·4만세 기념공원

자, 이제 익산의 3·1운동의 흔적을 살펴보자. 이곳을 가기 위해서는 익산의 한복상점이 있는 거리를 지나야 한다. 이 거리를 지나면 ‘솜리 근대역사문화공간’에 도착한다. 이곳의 중심에는 ‘4·4만세 기념공원’이 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익산의 가장 큰 만세운동은 1919년 4월 4일 일어났다. 그전에도 천도교와 기독교인이 중심이 되어 익산 곳곳에서 만세운동이 있었지만, 남부시장 장날이었던 4월 4일에 가장 큰 규모의 만세운동이 펼쳐졌다. 문용기의 지휘로 시작된 이날의 만세운동은 남전교회·도남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300여 명이 참여했다. 시간이 지나며 시위대 규모는 점점 커졌는데, 거의 1천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런데 만세운동을 하던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사람 중에는 일본 헌병이나 소방관뿐 아니라 일본인 농장의 관리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심지어 이들은 갈고리까지 동원하며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을 잔인하게 공격했다. 결국 이 과정에서 문용기를 포함한 6명이 순국하였고, 20여 명이 크게 다쳤다. 이때 문용기는 부상을 입고 목숨을 잃는 순간에도 “시민 여러분, 나는 죽어서도 우리 대한의 독립과 신정부의 건설을 위해 온몸을 바쳐 기도하겠소. 여러분을 대한민국의 신국민 되도록 죽어서도 이 땅을 지키겠소.”라고 호소했다. 지금 4·4만세 기념공원에는 문용기의 동상과 뜨거운 마음을 기리는 순국열사비가 세워져 있다. 


일제 수탈의 상징인 일본인 오하시의 농장

4·4만세 기념공원 앞에 번듯한 일본식 건물이 있는데, 이는 일제강점기 때 ‘오하시’라는 일본인의 사택이었다. 또한 기념공원 뒤에도 그가 사무실로 사용한 건물이 있다. 오하시는 익산에서 유명한 농장주였다. 그래서 “익산의 오하시인가, 오하시의 익산인가.”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익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은 다른 지역과 달리 농장이 시위대의 목표였다. 그만큼 농장은 이 지역 사람들에게 원한이 깊었던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오하시 농장은 단순한 회사가 아닌 수탈의 상징이며 식민지 권력을 대표하는 기관이었다.


4·4만세 기념공원 주소 & 문의

전북 익산시 주현동 105-7  |  02-3672-5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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