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일원으로서 발 벗고 나선
3·1운동 현장을 발굴하다
글 독립기념관 독립운동가 자료발굴TF팀
독립기념관은 2018년부터 독립운동가를 발굴하여 국가보훈처에 유공자로 포상·추천하고 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한 분을 존중하고 기억하는 정부의 의지와 국민적 관심을 담은 것이다.
2023년 매월 독립기념관이 발굴한 독립운동가를 소개한다.
김두순(金斗淳)
황해도 서흥군 도면 송화리 2021년 대통령표창(2019년 포상추천)
유병관(劉秉寬)
황해도 서흥군 도면 송화리 2021년 대통령표창(2019년 포상추천)
김두성(金斗星)
황해도 서흥군 도면 송화리 2022년 애족장(2022년 포상추천)
김원보(金元甫)
황해도 서흥군 도면 송화리 2022년 대통령표창(2020년 포상추천)
민응식(閔應植)
황해도 서흥군 도면 송화리 2022년 대통령표창(2022년 포상추천)
원용팔(元用八)
황해도 서흥군 소사면 방곡리 2022년 대통령표창(2020년 포상추천)
전종철(全宗喆)
황해도 서흥군 도면 두무리 2022년 대통령표창(2020년 포상추천)
100여 년 전 송화리 주민들이 만세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이 길을 따라 능리 장터로 갔으리라.
송화리(현 성매리)와 능리(현 문화리)를 연결하는 도로_조선향토대백과 제공
한국독립운동의 시작, 3·1운동의 도화선
3월 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 태화관에서는 ‘민족대표’로 서명한 33인 가운데 29인이 참석하여 독립선언식을 가졌다. 같은 시각 탑골공원에 모인 학생들은 별도로 독립선언식을 열었다. 선언식을 마친 뒤 29인의 대표는 그 자리에서 바로 경찰에 연행되었으나, 학생들은 서울 시가지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민족대표로 서명한 이들은 모두 종교 지도자들로 독립선언식을 갖는 데 머물러 대중들을 시위현장에서 지도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민족대표는 선언서를 발표하여 만세시위를 촉발함으로써 주어진 역할을 자임한 반면, 그들의 영향력은 3월 1일, 3·1운동의 도화선에 점화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선언서 발표로 만세시위의 대중화와 확산에 미친 영향은 3월 1일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민중들의 마음을 울린 독립선언서에 담긴 민족자결주의
3월 상순 독립선언서는 기독교·천도교 출신의 종교인·청년·학생이 중심이 되어 경기도·황해도·평안도·함경남도의 지방 도시로 퍼져나갔다. 3월 이후 독립선언서를 접한 민중들은 그 속에 담긴 자유·평등·인도를 내포한 민족자결주의를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먼저 종교인·청년·학생의 활동을 통해 민중 자신들이 선언문에 담긴 이념을 이해하며 시위에 참여하였다. 독립선언서에 담긴 사상은 나라를 잃은 민중들이 가슴으로 이해하여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치며 움직이기에 충분하였다. 3·1운동이 대중화단계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민족자결주의도 일반 대중사이에 그 수용의 폭을 확대하여 나갔던 것이다. 민중들이 독립선언서에 담긴 사상을 이해하였다는 실마리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바로 ‘독립운동 관련 판결문’을 통해서 그들이 만세시위에 어떠한 신념을 지니고 참여하였는지 알 수 있다.
황해도 민중들에게도 닿은 독립선언서의 이념
3·1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민족자결주의는 온 나라에 퍼졌다. 그 중 특히 황해도 지역 만세시위 참가자의 고등법원 판결문에는 민족자결주의를 수용한 만세시위 참가자들의 면모가 자세히 드러난다. 그들의 상고취지서를 살펴보면, 모두 만세시위에 참가한 것은 민족자결주의에 의거한 것이라 하며 시위의 정당함을 주장하고 있다. 1919년 3월 10일 황해 서흥군 도면 능리시장에서 만세시위를 외치다 체포된 송화리 주민의 판결문을 살펴보자. 판결문에 드러난 독립운동 참가자들의 직업은 농민, 서당·학교 교사 등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농민 민응식은 “파리평화회의에서는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민족자결로 독립을 승인한다는 취지 (중략) 또한 누군가로부터 독립선언서를 빌려 읽어 보았는데 독립의 기운이 조선에 이르렀다고 믿어 나도 조선 2천만 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중략) 만세를 불렀을 뿐”이라고 시위 참여 동기를 밝혔다. 서당 교사 전종철은 “파리회의에서 독립을 원하는 민족은 독립을 허락한다고 하여 (중략) 사람의 본분을 지킨 것에 불과하니 나는 죄가 없다”라고 주장하였다.
민응식의 상고취의
절치부심의 송화리 주민들, 다시 일어나다
그러나 송화리 주민들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3월 10일 김두순·전종철 등은 송화리 서당 앞마당에 부근 주민들을 모아서 만세시위의 취지를 설명하고 능리로 진출하였고, 소사면 방곡리의 서당 교사도 학생들을 격려하여 함께 능리 장터로 나왔다. 오후 4시경 능리 장터에 모인 주민들은 김원보·유병관 등을 따라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을 시작하였고 길가에 늘어선 주민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나눠주며 시위에 참가할 것을 권유하였다. 한편 민응식 등은 능리로 나가는 도중, 도면 면사무소 앞에 모인 또 다른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였다. 2백여 명에 달하는 시위대는 도면사무소 앞마당, 능리헌병주재소 등으로 옮겨 다니며 시위를 벌이다가 일본군 보병부대와 헌병의 무력 진압에 의해 해산되었다. 그날의 독립만세 소리와 태극기 휘날림은 2백여 명이 넘는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나간 것이다.
고등법원 판결문_국가기록원 제공
독립운동 참가자 발굴의 중요 공적, 판결문
타 지역에서도 관헌자료·신문자료를 비추어 보아 민족자결주의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나, 황해도는 더욱 그들의 동기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눈에 띌만하다. 황해도 서흥군의 시위현장에서 볼 수 있듯이 판결문은 만세시위에 참여한 일개인의 동기와 지역의 시위현황을 오늘날 가늠할 수 있게 한다. 판결문은 독립운동가의 인적정보, 행형, 시위현황을 알 수 있게 해주어 새로운 독립운동가를 발굴하는데 중요한 사료가 된다. 서흥군 관할 법원은 해주지방법원과 평양복심법원이므로 분단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1심과 2심의 판결문은 확인할 수 없으나 상고(上告)한 일부 참가자들의 고등법원 판결문이 위와 같이 남아있다. 천만다행으로 이 지역의 시위상황을 재구성하여 묻혀있던 3·1운동 참가자들을 발굴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독립운동가 자료발굴TF팀은 기존에 포상되지 못했던 열 분을 새롭게 발굴하였다. 그 결과 김두순·유병관은 2021년 대통령표창, 김두성은 2022년 애족장, 민응식·김원보·전종철·원용팔은 2022년 대통령표창에 서훈되었고 나머지 세 분은 공적심사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