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 독립기념관 3월호
끝나지 않은 독립운동

국내 독립운동 사적지,
대한민국 문화재로
가치를 승화시켜야 한다

 

글 이계형 (국민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얼마 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한인타운 인근 카탈리나에 위치한 흥사단의 옛 본부 건물(단소, 團所)이 현지 한인사회와 단체,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대한민국의 품에 안기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건물은 중국계 개발회사가 인수해 철거 위기에 놓였던 상태였다. 국가보훈처가 국외에 소재한 독립운동 사적지 보존을 위해 부동산을 매입한 것이 처음이라고도 한다. 
이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를 기회로 국내 독립운동 사적지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이를 문화재로 인식해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을 기대하면서 나름의 방안을 제언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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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사단 대회 사진(1950)

사진 속 건물이 1929년부터 1970년 말까지 로스앤젤레스(LA) 카탈리나 지역에 자리하여 흥사단 본부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국내 독립운동 관련 문화재 현황 

사전적 의미에서 ‘문화재’란 고고학·역사학·예술·과학·종교·민속·생활양식 등에서 문화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인류 문화 활동의 소산을 일컫는다. 우리나라의 문화재는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다. 이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가치가 높은 문화재를 엄격한 규제를 통해 항구적으로 보존하고자 주체에 따라 국가지정문화재와 시·도지정문화재로 나뉜다. ‘국가지정문화재’는 국보·보물·사적·명승·천연기념물·국가무형문화재·국가민속문화재로 분류된다.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면 문화재 외곽경계로부터 500m 이내의 시설물·건축물 설치는 사전에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할 정도로 엄격히 보존하고 있다. 

그런데 국가지정문화재 가운데 독립운동 관련한 국보는 한 점도 없다. 보물은 2,891건 가운데 11건에 불과하다. 안동 임청각이 1963년 1월 보물로 지정된 이후 10년 가까이 지나 윤봉길 유품·안중근 유묵(1972.8.) 등이 이에 포함되었고,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에 들어서도 백범일지(1997.6.), 황현 초상(2006.12.), 최익현 초상(2007.2.) 등이 선정되는 정도에 머물렀다. 최근에는 등록문화재였던 말모이 원고·조선말 큰사전 원고(2020.12.), 김구 서명문 태극기(2021.10.), 진관사 태극기(2021.10.), 이봉창 의사 선서문(2022.12.) 등이 보물로 승격·지정되었다. 

사적은 총 540건 중에서 8건이다. 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과 천안 유관순 열사 유적은 비교적 이른 1972년 10월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이후에는 크게 늘지 않았다. 1990년대 이후 탑골공원(1991.10.), 홍성 홍주의사총(2001.8.), 화순 쌍산 항일의병 유적(2007.8.), 만해 한용운심우장(2019.4.) 등이 사적으로 평가받았고, 경교장은 서울시유형문화재에서 2005년 6월에, 이화장은 서울시기념물에서 2009년 4월에 사적으로 승격되었다.이렇듯 국가지정문화재는 전통 시대에 편중되어 있고 근대 관련, 특히 독립운동 분야의 보물, 사적은 매우 적다. 이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봐야 한다. 일단 광복 이후 한참 뒤에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에 기인한다.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국회에서 계류 중이던 문화재법안은 그해 10월 문화재 관리국이 발족하면서 다시 논의되기 시작하였고 1962년 1월에서야 ‘문화재보호법’이 공포되었다. 당시 초점은 삼국시대·고려·조선 시기에 한정하여 문화재 복원, 정비 등에 집중되었다. 한국독립운동이 근대 시기에 전개되었기에 그와 관련한 유적이나 유물이 문화재로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관련 연구 없이 한국 문화유산의 가치를 자리매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구 흐름은 1960년대부터 본격화하여 1970~1980년대 들어서 비로소 연구 제1세대가 형성되었고, 1980년대 사회주의운동까지 확대되었으며 1990년대에 제2세대 연구자들이 활발하게 연구되었다. 그런 만큼 한국 독립운동 관련하여 사적지, 문화적 가치 등은 뒤늦게 주목받았다. 그 결과 도시 개발과 인식 부족에서 적지 않은 독립운동 관련 사적지가 사라져갔다. 

그러다가 2000년대 들어서면서 근대 시기 문화유산 또한 언젠가는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기에 이를 도외시 할 수는 없다는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이에 뒤늦게나마 2001년에 등록문화재 관련 법안이 마련되었다. 이런 제도의 도입은 독립운동과 관련한 사적지를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는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보호되는 국보·보물·사적 등의 지정 문화재와 달리 훼손 위기에 처한 근현대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예전보다 독립운동과 관련한 문화재가 늘어났다. 제도가 시행한 지 7년 뒤에 2008년 8월 태극기 목판·남상락 자수 태극기·대한민국만세 태극기·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불원복(不遠復) 태극기·대한민국임시의정원 태극기 등이 등록문화재로 선정된 이래 2022년 10월까지 100개 가까이 된다. 이에는 독립운동(가) 유물과 더불어 북한산 기슭에 묻혀 있는 이준·손병희·이시영·안창호·김창숙·한용운·신익희·여운형, 망우리의 오세창·문일평·방정환·오기만·서광조·서동일·오재영·유상규 등의 묘소가 포함되었다. 이는 전통 시대 역사적 인물들 묘소가 지방기념물로 지정된 것과 차이를 보인다. 이와 더불어 유일하게 비교적 원형을 잘 보존된 예천 윤우식 생가(2013.10.)가 등록문화재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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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497호 이화장(문화재청)

독립운동 관련 지방문화재 현황

지방문화재는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하는데, ‘시·도지정문화재’와 ‘문화재자료’로 구분한다. 시·도지정문화재 중에 독립운동관련해서는 지방 유형문화재와 기념물이 이에 해당한다. 문화재자료는 시·도지사가국가 또는 시·도 지정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문화재 중에서 향토 문화와 보존상 필요하다고 인정한 것을 말한다. 독립운동과 관련한 지방유형문화재는 그리 많지 않다. 확인한 바로는 전체 4,033건 가운데 8건에 불과하다. 대개 독립운동가 초상이나 유물이고 사적지로서는 탑골공원 내 팔각정이나 승동교회 정도이다. 상대적으로 기념물은 1,759건 가운데 26건으로 많다. 이에는 유인석·민영환·최익현 묘소나 광주학생운동발상지·나주역사·임병찬창의유적지·제주 무오법정사항일운동발상지·아우내3·1운동 사적지 등이 포함되었는데, 여기서 세 분의 묘소가 왜 등록문화재가 되지 못했는지 의아하다. 

기념물 대부분은 독립운동가의 생가지이다. 안재홍·신익희·이강년·신돌석·김창숙·박열·신채호·최현배·이병기·이석용·백정기·이동녕·이상재·이종일·김좌진·한용운·손병희 등이 그러한데, 생가지가 지방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이를 복원하는 절차를 밟았다. 그런데 이와 달리 박상진·송진우·김한종·안희제·문양목 등의 생가지(터)는 기념물이 되지 못하고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는지 의문이다.이와 함께 서울의 경우에 한정하는 것이지만, 기념 표석이 있다. 서울시가 아시안게임(1986)과 서울올림픽(1988)을 맞아 1985년부터 현전하지 않는 역사적 장소, 또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사건이 발생한 공간에 역사문화유적 표석(標石)을 설치해 오고 있다. 이들 가운데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이나 서울시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을 제외하면, 2022년 현재 335건 가운데 독립운동 관련하여 50개로 확인된다. 주목되는 부분은 1993년 이후 서울 시내 3·1운동 유적지(보신각 앞·세브란스병원·중앙학림·마포종점·종로YMCA·유심사 터·상춘원 터·승동교회 등)에 집중적으로 세워졌다. 

다음으로는 독립운동가의 집터이다. 김경천·김창숙·노백린·민영환·손병희·송진우·심훈·베델·여운형·용성스님·이동녕·이범진·이봉창·이상재·이준·이회영·지청천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는 서울이 개발되면서 자연스럽게 소멸하였고 복원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이외에도 독립운동과 관련하여 6·10독립만세운동 선창 터·김익상 의사 의거 터·나석주 의사 의거 기념터·대한민국임시정부서울연통부지·독립선언문 배부 터·박자혜 산파 터·보성사 터·부민관 폭파 의거 터·서북학회 터·송학선 의사 의거 터·시위병영 터·신간회 본부 터·이충순 자결 터·정미의병 발원 터·조선건국동맹 터·조선어학회 터·진단학회 창립 터·찬양회와 순성여학교 설립 결의 터·한성정부 유적지 등에 기념 표석이 세워졌다. 기념 표석이 세워진 곳은 독립운동사에 의미 있는 곳이지만, 터만 남아 있다고 하여 그런지 문화재에 포함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전통 시대 역사적 인물들의 집터도 지방 유형문화재로 지정되거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독립운동가들의 집터가 기념물로 지정되기도 하였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점에서 독립운동 관련 문화재 지정은 전통 시대와의 형평성 문제, 역사적으로 볼 때 문화재 가치 기준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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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465호 경교장(서울시)(좌), 김좌진 장군 생가지 1989년 12월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후 1991년 복원(독립기념관)(우)

독립운동 사적지, 문화재 지정을 위한 방안

이를 해결할 방안으로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가 추진하고 있는 국내 독립운동 사적지 조사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국내 독립운동과 관련하여 처음으로 종합적인 실태를 조사하였다. 서울(1,783)을 비롯하여2007년에 경기 남부(143), 인천·경기 북부(106), 충북(155), 2008년에 대전·충남(157), 2009년에 강원도(91), 전북(123), 광주·전남(168), 대구·경북(181), 부산·울산·경남(214), 제주도(40) 등 17개 지역의 독립운동 사적지 조사가 이뤄졌다. 모두 3,161건이었다. 

조사 내용에는 근대 사적지와 일제 통치기관도 포함한 것이지만, 대개는 독립운동 관련 사적지인 만큼 의미가 크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역사적 가치가 큼에도 문화재에 포함되지 않은 곳이 적지 않다. 사적지 조사 의견란을 보면, 대부분 기념 표석(비)이나 안내판 설치와 홍보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지만, 이후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 방침이나 결과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이는 독립운동 관련 사적지를 문화재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에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 국내 독립운동 사적지 전체를 성격별로 나누고 기존에 문화재로 지정된 것을 확인한 뒤 역사적 가치가 이에 뒤지지 않는데도 제외된 것을 별도로 구분해야 한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형평성에 벗어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사적지가 적극적으로 문화재로 선정될 수 있도록 면밀히 분석하고 역사적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관계기관과의 긴밀한 의사소통을 통해 사적지가 문화재로 선정될 수 있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더는 독립운동 사적지가 없어지지 않고 국가지정문화재 또는 지방문화재로 등재되어 국가적인 차원에서 제대로 관리되어야 한다. 독립운동 사적지는 흔적만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암울했던 우리의 역사 속에서 배태된 것인 만큼, 100년 뒤에는 매우 가치 있는 문화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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