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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에서 불어온 행복의 바람, 휘게

글 장근영 심리학자
북유럽에서 불어온 행복의 바람, 휘게
휘게(Hygge), 행복한 만족감을 느끼게 해주는 아늑함과 편안함, 그리고 친근함을 뜻하는 덴마크, 노르웨이의 단어다. 이 자체는 그 지역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사용해온 일상어지만, 영국이 ‘브렉시트(Brexit)’ 다음으로 2016년을 정의하는 단어로 휘게를 선정했을 정도로 최근 부각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탄생한 단어
현지 사람들이 휘게라는 단어를 통해 떠올리는 가장 전형적인 이미지는 자기 집에서 촛불을 켜놓고 혼자 혹은 소수의 친한 친지들과 따듯한 음식이나 맥주를 즐기며 소소한 퍼즐을 풀거나 하는 아기자기한 시간이다. 그러나 이 단어의 기원을 살펴보면 이것이 느긋함이나 편안한 환경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휘게는 노르웨이어로 말 그대로의 행복 혹은 웰빙을 뜻한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은 이 단어가 ‘안아주다’라는 뜻의 ‘허그(Hug)’가 기원이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허그라는 단어는 옛날에는 종종 휘가(Hygga)라는 단어와 혼용되곤 했다는데, 휘가의 뜻은 ‘위로해주다’이다. 그리고 이 단어의 기원은 멀리 게르만족의 고대어인 휘간(Hugyan)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뜻은 ‘생각해주다’ 혹은 ‘배려해주다’이다. 그러니까 이러한 기원을 종합적으로 봤을 때 휘게는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나를 위로해주기 위해 안아준 따듯한 포옹’에서 비롯된 말이다.
만약 내가 사는 사회가 늘 편안하고 따듯하며 나에게 우호적이라면, 굳이 집에 들어가서 누군가의 포옹으로 위로 받을 필요가 있었을까? 덴마크의 자연 환경은 온화함과는 거리가 멀다. 섬나라여서 비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이 계절의 절반을 차지한다. 한편 수질이 나빠서 식수가 귀하고, 가뜩이나 척박한 토질은 19세기 잇따른 전쟁으로 그나마 남아있던 비옥한 농토마저 황폐해졌다. 이러한 시련 탓에 덴마크 인들은 생존하기 위해 밖으로는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점령해 괜찮은 영토와 자원을 확보하고, 안으로는 작은 것에 만족하는 금욕주의적 삶을 체화해왔다. 이 시절 그들의 생활상은 영화 <바베트의 만찬>에서 엿볼 수 있다. 영화에서 맛없고 거친 음식에 만족하며 지내던 덴마크인 들은 생전 처음 보는 프랑스 왕실요리를 두고 놀라움을 넘어 공포심까지 느꼈다.
지금도 덴마크의 상황은 완벽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빈부격차는 상위 20%의 국민이 국가 전체 부의 99%를 보유해서 세계 최대 수준이고, 가계부채 역시 세후 가처분 소득의 300%를 웃돌고 GDP 대비 123%에 달해 세계 최대 수준이다. 소득대비 세율 역시 평균 48% 이상으로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소박한 자기만족
『덴마크 사람들처럼』의 저자 말레네 뤼달(Malene Rydahl)은 덴마크가 생존하기 만만치 않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1973년 국가별 행복지수 조사를 실시한 이래 계속 세계행복지수 1위를 유지하는 비결이 바로 이 휘게의 정신에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휘게의 특징은 화려함이나 호화스러움의 정반대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핵심은 간결하고 소박한 자기만족이다. 불필요한 요소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만족의 핵심만을 추구한다는 점은 미니멀리즘과도 일맥상통하는 태도다.
우리가 화려하고 호화스러운 무언가를 원하는 이유는 온전히 나만의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다. 남들에게 드러내고 인정받기 위해서, 타인의 시선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 그리고 사람들의 부러움을 얻기 위해 화려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내 감정’을 말하지 않고 ‘국민정서’를 먼저 말하는 것처럼, 욕망의 대상 역시도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원하는 것을 달성하려고 드는 셈이다.
이렇게 남의 눈으로 자신을 보는 태도는 소유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평가에서도 그렇다. 한국이 인구대비 성형수술 비율이 세계 최고인 것도, 학부모들이 자신은 결코 해본 적이 없는 무자비한 입시공부를 자녀들에게 강요하고 자녀의 학업성취를 마치 자신의 성취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사고방식도 결국 자기 평가를 타인의 시선에 의존하는 데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진짜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지는 대중의 욕망이 자가발전으로 더욱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아무리 물질적인 성취를 이루어도 정작 스스로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불안감에 시달린다. 각종 미디어에서는 휘게가 마치 새로운 삶의 지혜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에도 이미 이와 같은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주어진 일에 충실하며, 적은 수입에 맞는 소비생활을 이어가며 작은 것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주변에 늘 있어왔다.
지금 한국 사회는 조금 더 나은 사회를 향한 변화를 꿈꾸는 중이다. 그 변화의 목표는 모두가 물질적으로 부유하고 화려하게 살면서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삶이 아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조금 더 공평하게 이익을 나누고, 사회안전망을 든든히 하기 위해 지금까지 누리던 내 몫을 일부 포기하는 것을 감수하는 삶을 지향한다. 우리가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불어오는 휘게의 바람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장근영
심리학자 겸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책연구소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활동하며 대학에선 매체심리학·발달심리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 오디세이』, 『팝콘심리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