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답을 찾다
사랑을 말한 아나키스트

글 이성주 역사칼럼니스트
사랑을 말한 아나키스트
“나는 박열을 사랑했다. 사랑받고 있는 것은 타인이 아니다. 사랑하는 타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다. 즉, 그것은 자아의 확대라 할 수 있다.”
- 도쿄 지방 재판소 12차 예심 中 가네코 후미코의 발언 -
박열(朴烈) 열사와 가네코 후미코(金子 文子)의 사랑에 대해선 많이 알려져 있다. 일제는 관동대지진과 이후 벌어진 관동대학살로 비등해진 여론을 돌리기 위해 박열과 그의 연인 가네코 후미코를 일왕 암살 모의 혐의로 검거해 사건을 날조하고, 이들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다.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지만, 가네코 후미코는 자결하고, 박열은 22년 2개월이란 긴 수감생활 끝에 광복을 이룬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불우한 인생, 필생의 동지를 만나다
▲1903년 가나가와 현 요코하마 시 출생 ▲양친의 양육 거부로 호적에 오르지 못한 채 1912년 충북 청주의 고모집에 의탁 ▲3·1운동을 목격한 뒤 독립의지 확인 및 공감 ▲1922년 박열과 동거 시작 ▲1926년 일왕 암살 모의 사건으로 사형 판결.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 받았으나 옥중 자살
가네코 후미코의 삶은 한 마디로 박복(薄福)했다. 부모는 그녀를 버렸고, 친척집을 전전할 때마다 돌아온 건 학대였다. 이런 환경이 조선인을 이해하는 단초가 되어 3·1운동을 통해 공감으로 이어졌고, 종국에 가서는 아나키즘(Anarchism)으로 발전했다. 이때 그녀에게 다가온 이가 바로 박열이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운명이었다.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하늘을 보고 짖는/ 달을 보고 짖는/ 보잘것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어느 날 일본 유학생들이 펴낸 잡지 『조선청년』에 실린 박열의 시 ‘개새끼’는 가네코 후미코에게 강렬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서로의 사상이 통한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곧 한 지붕 아래서 생활하게 된다. 여기서 주목해봐야 할 것이 이들의 동거서약이다.
첫째, 동지로서 동거한다.
둘째, 운동 활동에서는 가네코가 여성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는다.
셋째, 한쪽의 사상이 타락해서 권력자와 손잡는 일이 생길 경우 즉시 공동생활을 그만둔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결혼을 능가하는 동거서약 내용이다. 신념에 충실한 삶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이상적인 신념과 사랑의 양립이라고 해야 할까?
사랑을 좇아 모든 것을 내걸다
“나는 박열을 알고 있다. 박열을 사랑하고 있다. 그가 갖고 있는 모든 과실과 모든 결점을 넘어 나는 그를 사랑한다. 나는 지금 그가 나에게 저지른 모든 과오를 무조건 받아들인다.”
재판을 받던 당시 가네코 후미코가 남긴 증언이다. 사랑이란 건 사랑하는 이의 결점까지도 사랑하는 것이다. 그녀는 박열을 사랑했다. 그녀의 사랑은 ‘사랑받고 있는 것은 타인이 아니다. 사랑하는 타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다’라는 발언에 이르러 확신이 된다. 사랑하는 이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라는 통찰. 고작 23살의 나이에 얻은 성취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예리한 직관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계산된 사랑을 하기 시작했다. 완벽한 사랑이란 부모자식 간의 사랑밖에 없다면서, 타인과의 사랑에 계산기를 들이민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이란 자신을 온전히 내 던져 사랑하는 타인 속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하는 행위가 아닐까?
가네코 후미코는 그녀가 말한 사랑을 하기 위해 어떠한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그 해답도 분명히 갖고 있었다.
“내 생명이 지상에 붙어있는 한, 지금이란 때에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좇아서 행동할 것이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문구가 아닌가? 한때 우리나라를 휩쓸었던 자기계발서에 자주 등장했던 문장이 보인다. 박열과 함께 일왕 암살 모의 죄목. 즉, 국사범(國事犯)으로 분류됐던 가네코 후미코에게는 공식적으로 7번의 전향 권유가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지금이란 때에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좇겠다’는 그녀의 말은 전향을 회유하는 재판장에게 내뱉은 말이었다. 자기계발서에서 흔히 말하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이 가장 하고픈 일을 하라’는 말과는 가슴에 와닿는 무게가 사뭇 다르다. 전향하지 않으면 사형에 처하게 될 상황에서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하고픈 일이 사랑과 신념을 지키겠다니, 이러한 선택을 과연 아무나 할 수 있을까. 말 그대로 ‘목숨을 건 사랑’이다.
사람들은 흔히 나보다 더 많이 날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누가 더 많이 애착을 갖는지 재고 따지며 하는 사랑을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요즘 세태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인에게서 나를 발견하게 하는, 그런 사랑이 아닐까. 가네코 후미코의 삶과 그녀가 남긴 말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고민해 봤으면 한다.
이성주
시나리오 작가 겸 역사칼럼니스트.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글쓰기를 목표로 『조선의 민낯』, 『왕들의 부부싸움』과 같은 역사서를 출간한 바 있다. 최근에는 국제정치와 관련된 연구 및 집필에 열중하고 있다.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 시리즈 1, 2, 3권을 출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