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숨은 역사
물이 시작되는 고장
-전라북도 장수-

글·사진 김초록 여행칼럼니스트
물이 시작되는 고장
-전라북도 장수-
산이 높고 골이 깊어 전라북도의 지붕이자 남쪽의 개마고원이라 불리는 장수는 천 리에 이르는 금강이 시작되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어딜 가나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명소가 기다리고 있다. 여정의 시작은 이 고장 끝머리에 있는 토옥동 계곡에서 시작한다. 남덕유산 한 자락인 삿갓봉을 옆에 끼고 깊숙이 들어간 토옥동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장수의 보물 같은 곳이다.
우리말 연구에 평생을 바친 애국자
토옥동 계곡에 위치한 들머리마을 한복판에는 우리말과 글을 지키는데 평생을 바친 건재 정인승의 기념관이 있다. 이곳에서는 유품을 비롯해 그와 관련된 다양한자 료들을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으며, 그 옆으로는 영정을 모신 사당과 동상이 서 있다.
정인승은 1935년 조선어연구회를 창립하고 한글 큰사전 편찬과 학회 기관지인 <한글> 편집에 관여하는 등 우리말 연구를 통해 항일애국운동을 펼쳐나갔다. 이후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체포돼 3년 동안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한글을 비롯한 국학의 연구는 단순히 학문적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민족적 차원의 문제다.”라고 설파했던 선생의 뿌리깊은 나라사랑은 오늘날까지도 귀감이 되고 있다.
계북면 소재지에서 나와 천천면 구신마을에 잠시 들러본다. ‘섶밭들산촌생태마을’로도 불리는 이 마을은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수분령의 뜬봉샘에서 발원한 깨끗한 물줄기가 마을길을 따라 내려오니 천연기념물인 수달을 비롯해 보호 수종인 쏘가리·꺾지·버들치·쉬리·돌고기들이 지천이다. 또한 봄철 고사리·취나물·더덕·도라지·잔대 등 산나물들이 풍성하게 자라 봄기운을 만끽하려는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생태관광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섶밭들산촌생태마을의 황토집
논개가 태어난 주촌마을
장수를 빛낸 여러 인물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논개는 단연 돋보인다. 천천면에서 육십령 쪽으로 가다 대곡호를 지나 4㎞쯤 거슬러 올라가면 논개가 태어난 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에 이른다. 임진왜란 때 왜장을 끌어안고 진주의 남강으로 몸을 던진 논개를 기리기 위해 마을 한쪽에는 생가와 논개동상·사적불망비각·유허비 등이 설치되어 있다. 특히 ‘一’자형 초가로 복원된 논개 생가에는 그녀의 초상과 침구·책들이 놓여 있고 마당과 마루는 옛 모습을 그대로 살려놓았다. 마을 입구에는 논개를 낳기 위해 공을 들였다는 서낭당이 남아 있는데, 그 앞에서는 정초마다 제수를 차려놓고 마을의 안녕을 비는 산신제를 지낸다고 한다.
한편 주촌마을은 농촌진흥청에서 지정한 농촌전통테마마을이기도 하다. 논개 생가지 투어 이외에도 김장체험·이엉 얹기·고구마 캐기 등 연중 다양한 체험행사가 열리며, 굴피와 죽데기로 만든 전통가옥의 숙박시설은 도시에선 느끼지 못했던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또한 마을 주민들이 직접 가꾸고 만든 콩·청국장·오미자·도토리묵 등 농특산물을 싼값에 구입할 수 있다.

논개의 생가

유허비
장안산이 숨겨놓은 영험한 계곡
주촌마을에서 바라보는 장안산의 풍채는 우람하고 훤칠하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이곳은 산 좀 탄다는 사람들에겐 백두대간과 호남정맥을 연결하는 줄기라 하여 100대 명산으로 꼽힐 만큼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산정상에 서면 남쪽으로 중봉·하봉이 솟아 있고 북으로는 덕유산 줄기가 아득한데 눈을 멀리 주면 백두대간의 큰 산줄기와 지리산의 웅장한 모습도 시야에 들어온다. 장안산은 그 깊은 줄기에 아름다운 계곡도 만들어 놓았다. 그 첫 번째는 바로 지지계곡이다.
동화호가 있는 번암면 죽림리에서 지지리를 지나 장계면 대곡리까지 이어지는 지지계곡은 길이가 무려 10㎞ 달한다. 천혜의 자연이 내어놓은 맑은 물은 거친 물소리를 내며 바위를 타고 넘는데, 계곡과 나란히 이어지는 찻길을 따라가다 마음 끌리는 곳에 차를 세우고 자리를 잡으면 거기가 바로 천국이다.
장안산에는 지지계곡 이외에도 또 하나의 걸출한 자연미를 뽐내는 곳이 있으니 바로 덕산계곡이다. 용림댐 건설로 예전에 비해 멋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장안산 상류에서 내려온 물줄기가 죽산리 쪽으로 내달리다 중간쯤 골짜기에서 S자를 그리며 흐르는 모습은 여전히 웅장하고 아름답다. 이곳이 바로 덕산계곡 최고의 비경으로 손꼽히는 용소로, 암반을 타고 내려온 폭포수가 거대한 절구통처럼 움푹 들어간 바위 홈에 시퍼런 계곡물을 가득 담으니 천하절경이다. 장수 출신 황희정승이 이곳 용소에서 목욕재계하고 천지신명께 간절한 기도를 드린 끝에 재상에 올랐다는 전설도 이어져 오고 있다.
지지계곡과 이어진 동화호 아래에는 민족대표 33인으로 3·1운동을 주도했던 백용성의 생가지가 마련되어 있다. 호국불교·전통불교 실천에 앞장섰던 백용성은 일제의 친일 불교정책에 저항하는 등 근대불교가 자리를 잡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곳에서는 목조로 지은 생가를 비롯해 백용성의 유품을 소장한 용성기념관·여래탱화와 조사탱화를 봉안한 용성교육관·대웅보전·요사채·누각 등을 만나볼 수 있다.

백용성 생가

백용성 기념관


장안산 계곡물이 모여 만든 동화호
금강과 섬진강의 시작 뜬봉샘
장수읍내에서 남원 방향 19번 국도를 따라가다 수분령휴게소 조금 못미처 우측 원수분마을로 접어들면 뜬봉샘으로 가는 산길이 나온다. 뜬봉샘은 금강의 발원지로 이곳에서 솟아오른 물줄기는 실개천인 강태등골을 타고 1.5km를 흘러 수분천으로 이어진다. 이후 장수읍 용머리마을에서 섬진강의 물줄기인 팔공산 북쪽 계곡물과 만나게 된다. 산을 사이에 두고 서쪽은 섬진강 동쪽은 금강 수계로 나뉘는 데, 이곳이 바로 수분령이다.
해발 539m의 수분령은 예부터 한양으로 가려면 반드시 넘어야 하는 고갯길이었다. 마을에서 뜬봉샘까지는 2㎞ 거리로, 태조 이성계가 백일기도 끝에 조선의 건국을 계시 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한편 최근 뜬봉샘을 찾는 발길이 이어지자 장수군에서는 생태공원을 조성하여 다양한 시설을 들여놓았다. 그중에서도 금강사랑 물체험관은 관내에서 부상을 입고 구조됐거나 주민들로부터 위탁받은 다양한 멸종위기 야생동식물을 보호하는 치료소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장수읍내
뜬봉샘에서 차로 15분을 달려 도착한 장수 읍내에서는 1407년 창건되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향교로 유명한 장수향교를 만나볼 수 있다. 경내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들머리에 서 있는 하마비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글이 적혀 있다. 보물로 지정된 대성전은 앞면 3칸과 옆면 3칸에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 볼만한데 큰 사찰의 대웅전을 연상케 한다. 앞면 가운데에 단 여닫이문이며 우물 정(井)자 모양의 창·지붕 처마를 받친 공포 등 겉모양이 무척이나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이외에도 장수군청 앞에 있는 의암송도 볼만하다. 천연기념물 제397호로 지정된 이 소나무는 16세기 후반 당시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최경회가 의암 논개와 함께 심은 것이라 한다. 400년 이상의 수령을 자랑하는 의암송은 원줄기가 왼쪽으로 꼬여 수평을 이룬 모양새가 특징이다.

보물로 지정된 장수향교의 대성전

장수향교 들머리에 서 있는 하마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