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찾은 오늘
우리는 우리다운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글 이성주 역사칼럼니스트
우리는 우리다운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위당(爲堂) 정인보는 독립운동가로서도 유명하지만, 역사학자로서 남긴 발자취가 더 크다. 그는 나라를 빼앗긴 상태에서 그 ‘정신’까지도 일본에 빼앗겨 흐릿해져만 가는 민족 정체성을 보며 이를 확립해야지만 독립을 이루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일제강점기 역사연구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조선인들의 마음에 민족적 자긍심을 심어주고자 한평생을 다 바친 겨레의 스승이었다.
조선인의 ‘얼’을 찾아서
▲독립운동가 정인보 ▲1893년 5월 6일 출생 ▲1912년 상하이로 건너가 독립운동단체이자 무역회사 ‘동제사’ 설립 ▲귀국 후 연희전문학교에서 강의 ▲<동아일보>에 ‘5천 년간 조선의 얼’이라는 역사연구 연재 ▲1948년 대한민국 초대 감찰위원장 취임 ▲1950년 6·25전쟁 발발 직후 납북 ▲이후 생사 미확인
명문가로 꼽히는 동래 정씨 집안에서 태어난 정인보는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웠고, 이후 양명학자인 이건방의 문하에서 실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국권을 빼앗긴 상황에서 계속 학문에 정진한다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그는 18살이 되던 해 상하이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한다. 전 재산을 털어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으나, 갑작스러운 부인의 사망 소식에 귀국하여 비밀리에 활동하다 여러 차례 옥고를 치렀다.
이후 정인보는 연희전문학교·협성학교·불교중앙학림 등에서 후배 양성을 통해 민족의 역량 강화에 힘쓰는 한편 <동아일보>·<시대일보>의 논설위원으로 민족의 정기를 고무하는 논설을 펴 민족계몽운동을 주도하였다.
한편 정인보를 이야기 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바로 정약용과의 관계다. 학문의 실용성과 민족의식 고취를 위해 노력했던 그에게 실학과 실학의 대표 주자였던 정약용은 일생의 연구과제였다. 그 결과가 바로 『여유당 전서』 간행이었다.
“역사의 줄기를 찾는 것은 역사의 밑바닥에서 천추만대를 일관하는 ‘얼’을 찾는 작업이며, 역사가는 낱낱이 역사적 사실을 탐구하여 궁극적으로는 역사의 뼈대인 ‘얼’의 큰 줄기를 찾아야 한다.”
정인보는 국권을 빼앗긴 상황에서 민족의 ‘얼’까지 빼앗긴다면 독립은 요원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민족의 얼을 되찾는다면 독립을 또한 쟁취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에 역사연구를 통해 일제에 의해 빼앗긴 민족의 얼을 되찾고자 하였다. 이후 삼국과 왜의 역학관계를 중심으로 광개토왕릉비문을 독자적으로 해석해 낸 그는 지속적인 역사연구를 통해 국권을 빼앗긴 한국인들의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해 나갔다.
자긍심은 우리에게서 온다
국제 경기가 열릴 때마다 인터넷상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바로 ‘국뽕’이다. 국가와 히로뽕의 합성어인 이 단어는 지나친 애국심 조장에 대한 반발적 표현이다. 이 국뽕이 나오게 된 근원을 따져보면 그 안에는 근대 동양 문화권의 자존심이 숨겨져 있다.
19세기 말 한·중·일 삼국은 탈아입구에 매진했다. 각 나라의 실정과는 무관하게 앞 다투어 서양 문명을 받아들였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동양 문화권은 자연스럽게 서양 문명에 대한 근원적인 열패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민족·문화·인종·음식·언어 등 국가와 관련 있는 모든 것들을 타국과 비교하여 우월하다는 걸 끊임없이 확인받으려는 습성이 생겨났고, 이는 현재의 ‘국뽕’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즉 국뽕의 핵심은 ‘타인으로부터의 확인’이다. 그러나 스스로 우월하다고 믿는다면, 이걸 확인받을 이유가 있을까?
자긍심이란 말을 풀어보면, 스스로 자신의 가치나 능력을 믿는 당당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긍심의 어디에도 ‘타인으로부터의 확인’은 없다. 정인보가 말한, 독립을 위한 자긍심은 바로 스스로 우리 민족의 가치와 능력을 믿고 당당히 가슴을 내미는 자세였을 것이다.
1945년 광복 이후 70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 민족이 내놓은 성과는 전 세계가 주목할 만한 수준이다. 독립 이후 전 세계 최빈국이었던 나라가 이제 거래 규모로만 보면, 전 세계 7위권의 경제대국이 됐다. 우리의 성장을 확인하고픈 마음 혹은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잘 안다. 그러나 진정한 성공은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스스로 우리의 성과와 가치를 믿는 것이 진짜 성공이고 또 진정한 실력일 것이다.
이성주
시나리오 작가 겸 역사칼럼니스트.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글쓰기를 목표로 『조선의 민낯』, 『왕들의 부부싸움』과 같은 역사서를 출간한 바 있다.
최근에는 국제정치와 관련된 연구 및 집필에 열중하고 있다.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 시리즈 1, 2, 3권을 출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