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소중한 귀’ 청진기
글 _ 이현석 서울의료원장대부분의 만화나 삽화에서 의사는 가운을 입고 청진기를 목에 두른 모습으로 묘사되곤 한다. 그만큼 청진기는 의사를 상징하는 도구이다. 기원전 400년경에 히포크라테스가 폐를 둘러싼 흉막강 내에 물과 공기가 찼을 때 들리는 소리에 대해 기술한 기록이 있을 정도로 청진의 역사는 오래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진은 몇몇 선구자들에 의해서만 이뤄졌다. 1809년이 되어서야 영국의 번스에 의해 처음 심장학 교과서에 언급됐다. 1818년 스위스 의사인 메이어는 임신부의 복부에 귀를 갖다 대고 태아의 심장음을 듣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때까지의 모든 청진은 의사의 귀를 환자의 몸에 대고 듣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환자, 특히 젊은 여자의 경우 청진은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거북한 일이었다.
그러던 중 평소에 청진에 많은 관심을 갖고 열정적으로 진료를 했던 프랑스 의사인 라에넥이 1816년 젊고 비만한 여자 환자를 진찰했다. 워낙 비만해서 청진을 해도 제대로 소리를 듣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 때 그는 아이디어를 내어 종이를 원통형으로 말아 한 쪽 끝을 환자의 심장 부위에, 다른 끝은 자신의 귀에 대었다.
심장과 폐의 상태를 정밀하게 알 수 있는 정교한 기계들이 다양하게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차적으로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청진기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예를 들어 천식은 지금도 청진 소견이 진단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결과는 크게 만족스러워 직접 듣는 것보다 훨씬 명확하고 크게 들렸다. 여기에 고무된 그는 원통형 나무의 한 쪽 끝에 직경 8cm가량의 홈을 중간까지 파고 반대쪽은 원통의 바깥 부분을 깔대기 형태로 깎은 다음 작은 구멍을 내어 반대측 홈과 연결되게 했다. 평소에 목공에 관심이 많았던 그의 취미가 빛을 발하여 최초의 청진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폐와 심장의 청진 소견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 업적을 남기면서 청진이 보편화되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 업적으로 1822년 프랑스대학 교수 겸 학술원 회원이 됐고 2년 후에는 작위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폐결핵으로 인해 45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청진기를 개발하기 전에 환자에게 직접 귀를 대고 청진하는 과정에서 결핵에 걸린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 청진기가 개발된 이후 나무, 금속, 유리 등 다양한 소재를 이용했지만 모두 딱딱한 재료여서 의사가 지나치게 머리를 구부려서 환자 가슴 부위까지 몸을 숙여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길이도 짧아 당시에 흔했던 감염병에 의사가 노출될 위험도 높았다. 특히 당시에 흔했던 벼룩이 점프하기 힘든 정도의 길이를 원하는 의사도 많았다. 따라서 유연하면서도 길이가 긴 청진기의 개발이 필요했다.
미국에서는 고무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던 ‘찰스 굿이어’가 고무에 유황을 첨가함으로써 고온에서 고무가 쉽게 변형되는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여전히 고온에서 녹고 저온에서는 갈라지는 특성 때문에 사용하기 힘든 소재였다.
1839년 우연히 유황이 섞인 고무를 난로 위에 놨다가 고약한 냄새를 내면서 검게 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고무는 단단하면서도 탄력이 좋고 변형이 되지 않는 이상적인 소재였다. 이렇게 고무에 유황을 추가하고 열을 가하는 방법이 개발되면서 새로운 소재가 생겼다.
굿이어는 이를 이용하여 다양한 제품을 만들었지만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하고 파산하게 된다. 현재 자동차 타이어로 유명한 회사는 나중에 다른 사람(세이버링)이 그의 이름을 기려서 설립한 것이다.
굿이어가 개발한 고무를 이용하여 적절한 길이를 가지면서도 자유롭게 구부릴 수 있는 청진기가 드디어 개발됐다. 1852년 지금과 같이 양 쪽 귀로 들을 수 있는 청진기로 발전했다. 청진기는 환자의 심장과 폐의 소리는 물론 장이 움직이는 소리를 듣는데 매우 유용하면서도 비용이 들지 않는 큰 장점이 있다.
심장과 폐의 상태를 정밀하게 알 수 있는 정교한 기계들이 다양하게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차적으로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청진기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예를 들어 천식은 지금도 청진 소견이 진단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필자의 경우 전혀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 예방주사를 맞으려 온 12개월 된 환자의 청진 소견만으로 선천성 심장질환을 발견하여 추가 검사를 받은 후 수술로 치료받게 한 적도 있다.
*본 글은 언론사 『디지털타임스』 ‘이현석의 건강수명 연장하기’ 2023년 4월 4일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