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에서
역사학자로
정재환
글 편집실 사진 제공 정재환
대중의 기억 속에 방송인과 사회자로 자리 잡은 정재환.
그가 어느 순간부터 TV에서 자주 보이지 않았다. 최근에는 방송 무대보다 강단에 주로 서기 때문이다.
개그맨으로 방송에 데뷔하여 1980~90년대 방송 사회자로 전성기를 누리고,
현재는 역사학자로서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그를 만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본다.
정재환
그동안 TV에서 자주 보이지 않아 근황이 궁금하다.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고, 방송에는 가뭄에 콩 나듯 얼굴을 내밀고 있다. 577돌 한글날을 맞아 새 책 『우리말 비타민』을 출간하기 위해 막바지 점검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우리말 비타민』(출간 예정)
방송을 하다가 어떤 계기로 역사학자가 되었나?
살면서 세 가지 관심사가 있었다. 첫째는 방송, 둘째는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진 한글, 마지막으로 역사였다. 1990년대에 방송 사회자로 잘 나갔었지만, 그때 당시 스스로 부족한 점을 많이 느꼈고 늘 배움의 갈증이 있었다. “한창 일할 나이에 무슨 공부냐”라는 진지한 충고도 들었지만, 공부가 하고 싶었고 열심히 하다 보니 방송보다는 강단에 더 많이 서게 된 것 같다.
제12회 국어책임관·국어문화원 공동연수회 특강 중인 정재환
2000년에 성균관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해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다.
그 당시 한글 사랑에 푹 빠져있어서 한글과 역사를 배우기 위해 마흔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성균관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했고, 졸업 후 곧바로 석사 공부를 했다. 2005년 당시 SBS <도전! 1000곡>을 진행하면서 공부를 병행했는데, 박사 과정을 시작하면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공부량이 많아지고 방송도 챙겨야 하다 보니 늘 시간에 쫓겨야만 했고, 방송과 공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당시는 공부를 더 하고 싶었고, 어렵사리 박사학위까지 취득할 수 있었다.
명성을 뒤로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방송에서 잘 나갔는데, 공부를 하는 게 좀 의아했나 보다. 공부에도 때가 있다는 말도 들었지만, 늦었다고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무언가를 정말 하고 싶을 때가 가장 좋은 때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때는 이런저런 생각하지 않았고, 우리말글 역사가 궁금해서 열심히 했고, 지금은 우리말글 역사와 의미를 어떻게 하면 두루두루 나눌 수 있을까 궁리 중이다.
한글문화연대라는 단체에 몸을 담고 현재는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한글문화연대는 우리말을 지키고 가꾸고 키우는 활동을 하는 단체다. 1997년쯤 영어를 공용어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제 사회에서 영어가 가진 위상이나 힘을 고려할 때 영어를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있었지만, 우리말을 버리고 영어를 국어로 하자는 데에는 절대 찬성할 수 없었다. 그때 위기를 느낀 우리말 지킴이들이 모여 한글문화연대를 만들었다.
한글문화연대에서 하는 ‘한글 운동’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광복 후 전개된 한글 전용 운동, 문맹 퇴치를 위해 한글을 쓰자는 운동, 한글 이름 짓기 운동 등 한글을 적극 사용하면서 사회 발전을 도모하자는 운동이고, 한글을 어떻게 더 키워나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운동이다. 한글날은 오랫동안 쉬지 않는 기념일이었고, 그 시기 한글의 의미와 가치는 흐릿해져 가고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 국경일, 공휴일 청원에 나섰고, 2006년에 국경일, 2013년에 공휴일이 되었다. 요즘 한글문화연대는 ‘공공 언어 쉽게 쓰기’에 힘을 쏟고 있다. 쉽고 편안하고 안전한 언어생활을 위해 어려운 ‘노인쉘터(Shelter)’나 ‘KISS & RIDE’ 대신 ‘노인쉼터’와 ‘환승정차구역’을 쓰는 것이 좋다.
2020년 출간한 『나라말이 사라진 날』
방송인으로 살 때와 현재 중에서 어느 때가 더 행복한가.
예나 지금이나 행복하다. 살며 배운 것 중 하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행복하다는 것이다. 지금도 주변에서는 “방송 열심히 했으면 더 잘 나갔을 텐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잘 사는 것’의 척도가 돈이나 인기 같은 것이라면 그들의 말이 맞다. 하지만 돈이나 인기 혹은 지위가 잘 살고 못 사는 것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면 삶이 너무 슬프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대인들이 역사를 알고 배워야하는 이유를 알려준다면?
영국 역사가 에드워드 카(E.H Carr, 1892-1982)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와의 대화다’라고 했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인식하고 미래를 개안하게 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역사를 안다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를 알아야 현재의 나를 알 수 있고, 미래의 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결국 꿈을 꿀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중요한 선택의 순간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 그 사람은 어떤 선택을 했는지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순간들이 누구의 삶에나 있다. 그렇기에 역사를 통해 선택할 수 있는 어떤 지혜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공부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한다.
너무 진지하고 엄숙하게 역사를 공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시험을 쳐야 한다면 외워야 할 게 많지만, 그렇지 않다면 친구에게서 재밌는 얘기를 듣는 것처럼 역사를 공부하는 게 좋지 않을까? 역사는 우리 인류가 살아온 이야기고, 이야기는 재밌다. 다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역사는 발전하고 진화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역사를 통해 인류가 어떻게 발전해 나가야 할지, 또 어떻게 진화해 나가야 할지를 내다볼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