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광복군에 참여한
청년 독립운동가
이재현·한형석·송면수
글 독립기념관 전시부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서 한국광복군으로
중일전쟁 발발 후 항일전선에 본격 가담하기 위해 중국 등지에서 활동하던 한인 청년들은 1939년 11월 충칭(重慶)에서 한국청년전지공작대를 창설했다. 전지공작대는 결성 직후 시안(西安)으로 옮겨져 초모*공작과 선전활동 등을 전개했고, 1940년 9월 17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자 이듬해 한국광복군으로 편입되었다. 이재현, 한형석, 송면수는 한국청년전지공작대, 광복군으로 활동했는데 각자의 예술적 역량을 발휘해 항일정신을 담은 노래, 연극 등 창작을 통한 선전활동을 전개하며 독립운동을 이어나갔다.
* 초모(招募) : 의병이나 군대에 지망하는 사람을 모집함
한국광복군 제5지대 성립 기념사진 (1941.1.1.)_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초모활동을 전개하고 <2지대가>를 작사한 이재현
이재현은 1917년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나 1919년 상하이로 건너갔다. 1936년 이해평(李海平)이라는 이름으로 한국특무대독립군에 입단한 이래, 1938년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를 거쳐 1939년 한국청년전지공작대 공작조장 등을 역임하며 주로 일본군 배후 공작과 한인 병사 모집을 위해 활동했다. 한국광복군 편입 이후에는 제5지대 공작대장으로 임명되었고, 1944년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배속되어 <2지대가>를 작사해 군인들의 사기를 북돋기도 했다. 또한 미국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s, 전략첩보국)와 함께한 국내진공작전에 요원으로 선발되어 훈련받던 중 시안에서 광복을 맞았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한국청년전지공작대 환송기념 사진 (1939.11.17.)(좌), 미국 OSS 요원들과 한국광복군 (1945.9.30.)(우)
<광복군가>를 작곡한 한국광복군 제2지대 선전부장 한형석
한형석은 1910년 부산 동래에서 독립운동가 한흥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915년 베이징(北京)으로 가족과 함께 건너갔다. 음악과 연극을 공부하며 1933년 학업을 마친 후 중국군에 입대해 공작대장 등을 역임하다 한국청년전지공작대 창설에 참여, 예술조장으로 활동했다. 1940년 5월에 열린 <아리랑> 공연을 연출해 한인의 항일 의식을 널리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전지공작대의 광복군 편입에 따라 광복군에 합류한 그는 1941년 한국광복군 제2지대 선전부장을 역임하며 <광복군가>를 짓고 <압록강 행진곡>을 작곡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
『광복군가집 제1집』(1943.10.)_한종수 제공(좌), 이범석 장군과 제2지대 1구대 대원들(1945)(우)
예술공연을 통해 선전활동을 전개한 한국광복군 제2지대 정훈*조장 송면수
송면수는 1910년 강원도 회양에서 태어나 평양에서 성장하며 학업을 마치고, 잠시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다가 1930년대 초 중국으로 망명했다. 한국국민당계 청년들을 결집해 무장유격대를 결성한 그는 임시정부 요인·가족들과 동행했으며 1938년 연극 <삼일혼(三一魂)> 등을 통해 한인 장병의 사기 진작 등 선전활동을 펼쳤다. 1939년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참여하며 항일연극을 통한 선전 활동을 책임졌고 한국광복군에 편입되면서는 제2지대 정훈조장을 역임했다. 1945년 송면수는 OSS훈련을 받았고 국내정진군으로 국내진공을 준비하던 중 두취(杜曲)에서 광복을 맞았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9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 정훈(政訓) : 군인을 대상으로 한 교양, 이념 교육과 군사 선전, 대외 보도 따위에 관한 일을 통틀어 이르는 말
한국광복군 제2지대 간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