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숨은 역사

몸과 마음으로 만나는
늦가을의 풍치

몸과 마음으로 만나는<BR />늦가을의 풍치



글 사진 김초록 여행칼럼니스트


몸과 마음으로만나는늦가을의 풍치

-경상북도 상주-




어느덧 가을이 저문다. 천지사방에 색색의 가을빛을 흩뿌렸던 생명들은 겨울 준비에 여념이 없다. 백두대간 동쪽 자락에 안긴 상주도 벌써 겨울 채비에 들어갔다. 상주는 어딜 가나 산과 골이 앞을 막아서니, 두 가닥 혹은 한 가닥 길이 그사이를 가로지르며 빼어난 경치를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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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강·들을 벗삼아 걷기 좋은 낙동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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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에서 생산되는 감은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상주의 명물을 찾아서

상주 여행은 중부내륙고속도로 함창·점촌 나들목에서 시작한다. 지도를 펴면 이곳에 명주박물관이 있다. 상주는 예부터 ‘삼백의 고장’이라 불릴 만큼 삼백이 유명했다. 삼백이란 흰색을 띤 특산물, 즉 쌀과 목화, 누에고치 등을 일컫는다. 요즘은 목화 대신 곶감이 상주 농가의 주요 소득원이다. 우리나라 곶감의 60%가 상주에서 난다고 하니 효자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 셈이다

명주박물관은 친환경 섬유 소재인 명주를 널리 알리기 위해 만든 시설이다. 누에고치가 실이 되고, 다시 실이 명주(비단)가 되는 과정을 전시하고 있다. 명주 섬유는 누에고치에서 뽑아낸 단백질이 주성분인데 보습성이 뛰어나 정전기 방지와 세균 번식 억제·자외선 차단·피부보호에 좋다. 명주 주산지로 알려진 함창읍에는 박물관을 비롯해 명주 판매장·명주제품 체험장·장수직물공장·홍보전시관을 둔 명주테마파크가 있다.

명주박물관에서 5분 거리에 독립운동사적지가 있다. 함창읍 태봉리 109-1번지 일대. 이곳은 일제의 국권침탈에 맞서 의병들이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이른바 태봉전투다. 당시 일본군 병참부대가 주둔했던 곳이지만 지금은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 의병들은 일본군의 서슬 퍼런 무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방을 사이에 둔 채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두 차례에 걸친 싸움 끝에 일본군에게 제방을 빼앗기고 군세에 밀려 퇴각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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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변에 있는 퇴강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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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대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낙동강1234



낙동강 1,300리 물길, 상주에 닿다

강원도 태백 황지에서 시작하는 낙동강 1,300리 물길은 상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그 유장한 물길을 따라간다. 낙동강 물길이 시작되는 사벌면은 예천·문경과 닿아있다. 삼국시대 초 사벌국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낙동강은 상주 땅을 적시며 숱한 비경을 만들어 놓는다.

퇴강리 낙동강변에 자리한 퇴강성당은 경부 북부 지방의 대표적 성당으로, 1956년에 지어졌다. 화려하기보단 검소하고 정갈한 시골성당에 가깝다. 작은 성당 주변으로 고즈넉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낙동강을 굽어보는 비경, 경천대도 지척에 있다. 경천대경상북도 상주소통하다로 가기 전에 충의사에 잠시 들렀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한 정기룡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육지의 이순신’이라 불렸다고 하니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사당 옆에는 유물전시관이 있어 그의 사상과 일생을 더듬어볼 수 있다.

경천대는 하늘이 내린 선물이다. 우거진 노송과 깎아지른 절벽, 기이한 모양의 암석, 그 아래 흐르는 강물까지 과연 절경이라 할만하다. 자천대(自天臺)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곧 하늘이 만들었다는 뜻이다. 강 건너 모래사장이 볕을 받아 반짝인다. 정기룡 장군이 그의 용마와 함께 뛰놀던 곳이란다. 또 경천대 한쪽에는 정기룡 장군이 바위를 파서 만들었다는 말 먹이통(구유통)이 남아 있다. 경천대 전체를 보려면 전망대에 올라야 한다. 3층짜리 팔각정 전망대에서 경천대와 낙동강을 바라보노라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문득 안동 하회마을의 부용대와 예천 회룡포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마을과 강이 빚어내는 자연미는 그보다 훨씬 빼어나다.

도보길(MRF 이야기 길)도 뚫렸다. 낙동강을 따라 이어진 길은 산길과 강길, 들길이 어우러져 걷는 재미가 있다. 낙동강 상주보 쪽에서 도남서원을 지나 비봉산을 끼고 경천대-매협리(낙동강 둑길)-상풍교-퇴강리(퇴강성당)-낙동강 700리 표지석으로 이어지는 강변길은 그 자체가 한 폭 그림과 같다. 특히 비봉산 정상의 전망대로 오르는 길이 장관이다. 발아래 흐르는 낙동강을 따라 걷다 보면 금세 정상을 마주한다.

경천대 근방에 자전거 박물관과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이 있다. 자전거는 곶감과 함께 상주의 명물로 꼽힌다. 상주는 지역 전체가 평평한 분지 지형이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에 적당하다. 도심 외곽 자전거 전용도로엔 재생고무 매트까지 깔려 있다. 자전거 보급률과 수송 분담률도 단연 전국 1위다. 버스와 택시가 드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물관에는 다양한 종류의 자전거가 전시돼 있다. 목마에 바퀴를 달아 페달 없이 땅을 치며 나아가는 세계 최초의 자전거 드라이지네와 첫 페달식 자전거인 맥밀런자전거, 의류 상표로 눈에 익은 오디너리 등 희귀품 수십여 점이 있다. 그러나 자전거는 보는 것이 아니라 타는 것. 자전거 박물관답게 이곳에서는 자전거 무료 대여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다.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은 규모가 꽤 크다. 환경부 산하 담수생물 전문 연구기관으로 유전자원은행 구축·유용자원 배양기술 확보·맞춤형 바이오산업 지원 등 생물자원의 수장과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상주보 아래 있는 ‘나각산 숨소리길’도 근사하다. 길은 나각산과 낙단보, 낙동강 역사이야기관으로 이어진다. 속리산에서 뻗은 산줄기가 낙동리 마을에 이르러 뾰족한 산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나각산이다. 산의 형상이 소라를 닮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나각산 테라스 전망대에 서서 바라보는 낙동리 들판이 시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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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남산근린공원에 있는 항일독립의거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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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음산 자락에 있는 고찰, 남장사



임진왜란과 독립운동의 현장

상주 시내 한복판엔 임진왜란에서 활약한 곽재우 장군과 무명용사를 기리는 충렬사와 비각, 기념관이 있다. 이곳에서 조선군과 왜군 주력부대가 처음 맞닥뜨렸다고 한다. 전쟁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임란기념관과 당시 순국한 열사들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충렬사)에서 잠시 참배의 시간을 가졌다.

상주 독립운동은 이안면 소암리와 화북면 장암리, 운흥리, 화서면 신봉리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상주에도 수백 명의 독립운동가가 체포되고 옥고를 치른 아픈 역사가 있다. 상주 시내 남산근린공원에는 1919년 3월 23일 상주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기리는 ‘항일독립의거기념탑’이 있다.

보은과 상주를 잇는 25번 국도변에 있는 오래된 사찰로 향한다. 남장사다. 정확히 말하면 남장마을 노음산 밑에 있는 절이다.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목각탱이 있는 보광전이 유명하다. 남장사를 병풍처럼 두른 노음산은 갑장산, 천봉산과 함께 상주 3악으로 불린다. 잔디 깔린 절 마당에 서니 풍경이 소리처럼 들려온다.

공검면 양정리의 공검지는 삼한시대에 쌓은 수리시설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한다. 이곳 사람들은 ‘공갈못’이라 부르곤 한다. 제천 의림지, 밀양 수산제와 함께 조선시대 3대 저수지로 꼽히는 데다가 보존도 잘 돼 있어 람사르 습지 등록을 추진 중에 있다. 둑길을 거닐며 연못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이곳만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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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기운이 감도는 맥문동 솔숲




속리산의 정기를 받은 은혜로운 땅

충북 보은과 상주에 걸쳐 속리산이 있다. 속리산에는 수많은 봉우리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장각폭포에서 장각계곡을 지나 천왕봉(해발 1057m)→문장대(1054m)를 잇는 장쾌한 능선이 압권이다. 특히 높이가 6m나 되는 장강폭포는 장강계곡을 쩌렁쩌렁 울리며 눈길을 사로잡는다. 폭포수가 떨어지는 용소(龍沼)는 금방이라도 용이 나올 것만 같다. 그 옆에 단정하게 자리 잡은 정자 금란정(金蘭亭)마저 본래 거기 있었던 것처럼 잘 어울린다.

장강폭포에서 길을 따라 동네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커다란 7층석탑을 발견할 수 있다. 마을 이름을 따 상오리 7층석탑(보물 제683호)이라 부른다. 과거 절이 있었던 자리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석탑만이 남아 흔적을 대신한다. 속리산 들머리의 맥문동 솔숲도 볼만하다. 꽃이 모두 져버린 것이 못내 아쉽기는 해도 코끝에 머무는 솔향이 향기롭다. 지그재그로 이어진 숲 산책로를 걷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안정된다.

조선 중기에 써진 『정감록』에는 상주시 화북면을 십승지지(十勝之地) 중 하나로 꼽는다. 이 안전하고 살기 좋은 땅에는 한말 국권회복과 독립을 위해 애쓴 의병들의위패를 모시는 광복의사단이 있다. 이강년·이용엽·이원재·이성범·이용회·이원녕·김재갑·홍종흠 등 8인의 의병들이 화북 일대의 독립만세 운동을 주도했다. 1894년 운강 이강년 선생이 의병장으로서 문경 동학군을 이끌며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했고, 이성범·이용회·김재갑·홍종흠은 3·1 운동 당시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또 이원녕은 아우 이한영과 함께 이웃한 문경 지방에서 창의군의 군자금 조달에 헌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