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로 보는 세계사

영국 절대왕정에 맞선
미국의 독립전쟁

영국 절대왕정에 맞선<BR />미국의 독립전쟁



글 고종환 아주대학교 외래교수


영국 절대왕정에 맞선

미국의 독립전쟁




존 트럼벌은 미국의 역사 화가로,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미국 독립 선언>이다. 때때로 그림은 <1776년 4월 필라델피아 독립 선언>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림이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느냐보다 중요한 것이 상징성이다. 미국 국회의사당 복도와 예일대학교 미술관에 같은 그림이 걸려있는 건 우연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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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립 선언  1820, 존 트럼벌(John Trumbul), 워싱턴 DC 미국 국회의사당



독립국가 미국의 탄생

독립 선언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그림은 미국 13개 주가 모여 독립을 쟁취하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1776년 7월 4일 미국은 독립을 선언했다. 영국의 절대왕정에 맞서 기나긴 식민지 역사에 마침표를 찍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독립선언문에 이날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1775년 제2차 대륙회의에서 벤자민 프랭클린·존 애담스·로저 셔먼·로버트 리빙스턴·토마스 제퍼슨 등 5인이 미국 독립선언서의 기초를 작성했다. 그림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들이 바로 그들이다.

특히 붉은색 조끼를 입고 가장 앞에 서 있는 사람이 토마스 제퍼슨인데, 그는 독립선언서 초안의 대부분을 작성했다. 사실상 미국 독립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후에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선언이 곧바로 독립을 의미하진 않았다. 독립 선언이 있고서도 약 8년간의 투쟁을 거친 끝에 1783년 9월 3일 파리조약에서 비로소 독립을 인정받았다.


홍차가 가져다준 미국의 독립

미국 독립전쟁의 정식 명칭은 ‘미국 혁명전쟁’ 종교개혁의 일익을 담당했던 청교도들이 영국 절대주의에 도전해 민주주의를 쟁취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당시 영국은 18세기 중반까지 북아메리카에 13곳의 식민지를 두고 자원획득을 위한 이권 지대로 관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새로운 강자로 부상한 프랑스가 식민지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영국과 프랑스는 식민지를 두고 경쟁하는 구도가 됐다. 영국에 대한 미국의 저항이 시작된 것도 이즈음부터였다.

영국은 프랑스와의 전쟁을 본격화했다. 동시에 전쟁 비용의 충당이 급선무로 떠올랐다. 이를 위해 영국은 미국인들에게 많은 세금을 부과하였고, 과중한 세금에 부담을 느낀 미국인들은 반발했다. 1773년 일어난 ‘보스턴 차 사건’에서 영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발을 확인할 수 있다. 사건의 시작은 인도산 홍차였다. 당시 인도산 홍차가 미국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는데, 영국은 재정난 해소를 위해 자국 동인도 회사에 인도산 홍차를 면세로 판매할 수 있는 단독권리를 주었다. 이는 미국 상인의 몰락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미국 상인들은 크게 분노하며 보스턴 항구에 정박 중이던 영국 상선을 습격, 이윽고 홍차 상자 300여 개를 바다에 던져 버렸다. 영국이 영국군 4개 연대를 보내는 것으로 사건을 일단락되었지만, 이후 영국이 손해배상 및 보스턴 항구의 폐쇄를 결정하자 미국인들의 반영감정은 극에 달했다. 1775년 4월 결국 미국인과 영국인 사이에 무력충돌이 발생하고 만다. 메사추세츠 렉싱턴에서 영국군과 식민지 민병대 사이에 갈등이 일어난 것. 이 일로 발생한 사상자만 200여 명이었다고 한다. 미국인들의 저항이 심화되자 이들 대표는 독립전쟁을 결의하고 조지 워싱턴을 총사령관으로 하는 연합군을 편성했다. 1776년 7월 4일, 13개 주 대표들은 필라델피아에 모여 토마스 제퍼슨의 주도로 완성한 독립선언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는데, 이것이 바로 그림의 내용이 되는 사건이다.

영국은 1777년 ‘세라토가 전투’에서 식민지 독립군에 패하면서 수세에 몰렸다. 특히 앙숙이었던 프랑스가 개입하고, 1780년에는 믿었던 러시아마저 중립을 선포하면서 국제무대에서 고립되고 만다. 러시아의 중립 선포는 미국을 지원한다는 의미와 다름없었다. 영국은 전열을 정비해 영국군 최대 거점인 버지니아의 요크타운으로 이동, 본국에서 오는 지원군을 기다리며 최후의 결전에 대비했다. 1781년 미국 조지 워싱턴 사령관과 프랑스 로샹보 장군이 이끄는 미프연합군 1만 5천 명과 영국의 찰스 콘월리스 장군의 7천 명 군사가 맞섰다. 그러나 영국은 내륙에서 공격해 오는 미국군과 해상을 봉쇄한 프랑스군에 꼼짝없이 갇혀버렸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무기와 식량부족에 시달리며 그해 10월 19일 항복을 선언했다. 이로써 ‘요크타운 전투’는 막을 내렸다.

요크타운 전투는 1773년 보스턴 차 사건에서 촉발된 미국 독립전쟁을 사실상 종결짓는 전투였다. 그리고 1783년, 파리강화조약에 의해 미국 식민지 13개 주는 마침내 영국에서 독립하여 미국으로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했다. 미합중국은 1787년에 헌법을 제정하고 1790년 사령관이었던 조지 워싱턴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하면서 완전한 국가의 모습을 갖추었다.




고종환

한국 프랑스문화학회의 재무이사이자, 아주대학교와 경상대학교 외래교수. 프랑스 문화와 예술, 서양연극사, 광고이미지 등을 강의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한권으로 읽는 연극의 역사』와 『오페라로 배우는 역사와 문화』, 『글로벌 다문화교육』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