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접시의 추억
조선의 갈치예찬

글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조선의 갈치예찬
70여 년 전 유행한 대중가요<빈대떡 신사>에는이런 가사가 있다.“돈 없으면 집에 가서빈대떡이나 부쳐 먹지”아마 당시 빈대떡은 돈이없어도 먹을 수 있는전형적인 서민 음식이었던모양이다.조선시대에도 빈대떡역할을 하던 음식이 있었다.바로 갈치다.갈치는 서민들의 씁쓸한입맛을 다독여주며찬거리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엉뚱한 오해를 사기도 했다.
조선시대 서민의 대표 음식, 갈치
18세기 중반, 한양 사람들 사이에서는 돈이 떨어졌을 땐 집에 가서 빈대떡, 아니 갈치나 구워 먹으라는 속담이 돌았다.정조대 실학자 서유구가 우리나라 수산물의 이름과 실태를기록한 『난호어목지』에도 비슷한 얘기가 등장한다. 한양에서는 돈을 낭비하고 싶지 않거든 소금에 절인 갈치를 사란말이 있다는 것이다. 아마 이 무렵 갈치는 한양에서 가장 흔한 생선 중 하나였던 듯하다.
규장각 검서관을 지낸 이덕무는 『아정유고』에서 당시 한양의 생활상을 읊었는데, 인상적인 것은 종로 육의전의 풍경을 묘사한 대목이다.
거리 좌우에 늘어선 수많은 상점
온갖 물건이 산처럼 쌓여 헤아리기도 어렵네
비단가게에 울긋불긋 널린 건
모두 능라와 금수이고
어물가게에는 싱싱한 생선이 두텁게 살쪘으니
갈치 농어 준치 쏘가리 숭어 붕어 잉어라네
그렇게 갈치는 저잣거리를 찾는 한양 사람들의 입맛을 유혹했다. 무엇보다 갈치는 소금에 절여 운반할 수 있었기 때문에 현지에서 잡아 올린 뒤 돈이 될 만한 좋은 것은 서울로올려보내곤 했다. 이에 정약용은 오히려 어촌에서 갈치 한번 먹기가 힘이 든다는 글을 남겼다.
“싱싱한 갈치와 좋은 준치는
모두 한성으로 올려보내고 촌마을에는
가끔씩 새우젓 파는 소리만 들린다.”
좋은 갈치는 모두 한양에 몰려 있으니 한양에서 파는 갈치의가격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구한말 관청에 물품을 납품하던 지규식은 『하재일기』에서 일꾼에게 술값으로 1냥 5전을 지급하는데 그중 1냥은 안주인 갈치값이라 언급한 적도있다. 당시 한 냥의 가치가 어느 정도였는지 정확히 알 수는없지만 밤에 참외 1냥 어치를 사 먹었다고 한 것을 보면 갈치값이 그다지 비싸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조선은 갈치가 많이 잡히기로 유명했다. 일 년 열두달 모두 갈치의 ‘철’이었다. 『임원경제지』에는 동해와 서해,남해에서 모두 갈치를 잡는데 계절에 따라 많이 잡히는 지역이 다르다고 설명했다.많이 잡히고, 소금에 절여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고, 값도 싼데다가 맛까지 좋으니, 조선시대에 갈치는 사랑할 수밖에없는 생선이었다.
‘치’생선과 ‘어’생선의 차이
너무 흔해진 나머지 갈치는 뜻하지 않은 오해를 받기도 했다. 사실 갈치뿐만 아니라 멸치·꽁치·가물치 등 이름에 ‘치’가 들어가는 생선들이 무더기로 받았던 오해였다. 한자로 물고기 ‘어(魚)’ 자가 들어가는 생선은 고급 어종인 반면 한글 ‘치’로 끝나는 생선은 저급이라는 것. 그래서 이들 ‘치’자생선은 제사상에도 올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근거 없는 헛소문이다. 이밖에도 생선의 이름과 관련한 다양한 설이 있지만 사실 ‘어’와 ‘치’의 이름에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 ‘어’는 생선의 한자 표기, ‘치’는 한글 표기일 뿐이다. 순 한글 생선 이름은 대개 ‘치’·‘이’·‘미’로 끝난다.
정약용은 『아언각비』에서 우리말의 어원을 밝혔는데 여기에 생선 이름과 관련한 내용도 등장한다. 그는 우리말 생선이름에는 ‘치’ 자가 들어간다면서 준치·날치·갈치·멸치 등을 예로 들었다. 국립수산과학원의 연구논문에서도 ‘치’로 끝나는 생선 이름은 예부터 우리 조상들이 자주 먹거나 봐왔던 친숙한 어류라고 밝히고 있다. 오랫동안 즐겨 먹던 음식이기 때문에 한자어 대신 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우리말 고유어가 남아있는 것이지 결코 낮잡거나 생선의 급을 구분짓기 위한 이름이 아니었다.
갈치를 대단히 좋아했던 조선시대 사람들이 갈치가 저급생선이라는 소문을 들었다면 코웃음을 쳤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게다가 요즘은 남획으로 귀한 몸이 된 지 오래인데, 갈치가 꽤 억울해 했을 법도 하다.
오해와 편견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갈치는 누군가의 식탁위에 올라 밥도둑 노릇을 했을 터다. 비싸서 자주 접하지 못하는 음식만이 고급이랴. 조선시대부터 서민들의 밥상을 지켜온 갈치의 친숙한 맛과 자태도 충분히 고급스럽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1984년 매일경제신문사에 입사해 20여 년간 기자 생활을 하면서 특파원활동, 출장, 연수 등으로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다양한 나라에 머물렀다. 음식에 관심이 많아관련 자료를 수집해온 결과, 음식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주요 저서로는『음식잡학사전』, 『신의 선물 밥』, 『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