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로 보는 역사 이야기
한국광복군 창설
80주년을 즈음하여

글 유완식 독립기념관 자료부 학예연구관
한국광복군 창설
80주년을 즈음하여

한국광복군(이하 광복군)은 1940년 9월 17일, 중국 충칭(重慶)의 가릉빈관(嘉陵賓館)에서 열린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을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이하 임시정부) 직할 국군으로 창설되었다. 당시 독립운동 세력은 좌파와 우파로 분리되어 각각 독립운동을 추진하고 있었다. 좌파 계열의 최대 독립운동 세력이었던 김원봉의 조선의용대가 임시정부에 합류하였고, 임시정부가 조선의용대를 광복군 제1지대로 편성함으로써 드디어 좌우를 아우른 민족의 국군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듬해인 1941년 12월 8일, 일제의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임시정부는 대일선전포고 후 연합군과 함께 대일전쟁을 전개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인도·미얀마 전선에서 영국군과의 공동작전을 위해 1943년 한국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印緬戰區工作隊)라는 이름으로 광복군 대원들을 파견한 것이다.
한편 임시정부는 미국 전략첩보국 OSS와의 국내진공작전, 일명 ‘독수리 작전(Eagle Project)’ 을 추진하기 위해 광복군 제2지대와 제3지대로 하여금 미군의 지휘 아래 OSS 특수훈련을 3개월 동안 받게 하였다. 마침내 8월 4일, 훈련을 모두 수료한 1기 훈련생들은 국내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광복군은 국내 진입을 위해 대기하고 있던 중 일본의 항복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일본의 항복으로 해방은 되었으나 국내진공작전이 무산됨으로써 우리 손으로 독립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
광복 후 임시정부를 정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미군정의 방침에 따라, 임시정부의 군대인 광복군 역시 개인 자격으로 환국하게 되었다. 결국 이듬해인 1946년 6월 광복군은 정식으로 해체를 선언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비록 광복 후 광복군은 해체되었으나 통위부(統衛部)의 초대 부장으로 임시정부 참모총장 출신 유동열이, 미군정에서 창설한 예비 국군인 국방경비대 사령관에 광복군 제2지대장 출신 송호성이 각각 임명되어 건군 작업에 참여하게 된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며 통위부의 모든 권한과 업무가 국방부로 이관되었다. 이를 총괄하는 국방부 초대 장관으로 광복군 출신 이범석 장군이 임명되었고 광복군 출신들이 국군의 주요 간부로 임명되었다. 또한 국방경비대 역시 대한민국 국군에 편입되면서 광복군 역시 자연스럽게 국군에 흡수되었다.
광복군은 대한제국 군대뿐만 아니라, 군대 해산 직후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과 독립군까지도 계승하여 독립군을 양성하고 항일전을 전개하는 등 나라를 되찾기 위한 활동을 계속하였다. 광복군 창설 80주년을 맞이하여 광복군의 독립정신이 독립운동사에서 갖는 역사적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후 한중 대표들 기념사진(1940. 9.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