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소한 이야기
서양인
조선에 터를 잡다

서양인 조선에 터를 잡다
개항기 조선의 서양인 마을
서울 정동
개항 후 조선에 서양인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조선인에게 푸른 눈을 가진 그들이 낯설 듯, 그들에게도 조선은 낯선 땅이었다. 다른 생활방식과 문화에 적잖은 혼란을 겪은 서양인들은 조선 안에 자신들만의 터전을 만들었다. 현재 서울시 중구, 덕수궁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정동’이 바로 그곳이다. 초대 주조선미국전권공사 루시어스 하우드 푸트가 정착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는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이듬해 서울에 도착, 명성황후의 친족인 민계호의 사저(정동 10번지)를 구입해 미국공사관과 관저로 사용했다. 미국을 시작으로 영국, 러시아, 프랑스 등의 공사관이 잇달아 들어서고, 공관 인근에 민간 서양인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정동은 금세 서양인 거리로 변모했다.
이 때문에 정동은 개항기 조선에서 근대문물의 중심지이자 전파지 역할을 했다. 건물은 서양 각국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졌고, 커피를 대접하는 손탁호텔이 생겼으며,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은 각각 최초의 근대교육기관과 근대여성고등교육기관으로서 한국의 많은 지도자를 배출했다.
현재 정동은 덕수궁 돌담길로 대표되는 서울의 관광지로 더 유명하다. 정동을 서양인 마을로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만 외국공관, 영사관, 선교기관 등 근대 건축물들이 남아 그 시절의 흔적을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