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히 흐르는 사유

<사유의 방>과 함께한 시간들


글. 최욱 원오원아키텍스 대표

공간에 담은 반가사유상의 가치

2021년 해가 바뀐 1월의 어느 날, 국립중앙박물관 반가사유상 전시와 관련하여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을 사랑한 동양미술사학자인 존 카터 코벨(John Carter Covell, 1910~1996)이 남긴 한국 문화유산에 대한 많은 글을 유심히 읽은 터라 한국 문화에서 반가사유상의 중요성은 잘 알고 있었기에 긴장이 되었다. 

사실 반가사유상과는 두 번째 만남이다. 2009년 미국 서부의 최대 미술관인 LACMA의 한국관 재개관 전시 때 한국 유물 100여 점이 전시되었는데 유물 케이스 디자인을 원오원이 했고, 당시에는 아크릴 케이스에 국립중앙박물관의 국보 반가사유상이 포함되어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과의 첫 만남에서 반가사유상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들었고, 국가 유물에 대한 박물관의 깊은 애정을 느꼈다. 전시실에 관한 요구 사항은 명료했다.


alt



명확하고 간단한 요구지만 풀기에는 난제였다. 떠오르는 의문과 박물관의 특성상 안전과 관련해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끝도 없었다. 전시실에 노출되고 크기가 작은 반가사유상의 섬세한 표정을 놓치지 않고 보여주려면? 유리 케이스가 없는 반가사유상을 뒷면까지 볼 경우 보안과 사람의 손이 닿지 않게 하면서도 반가사유상의 특징을 보여줄 수 있을지? 두 반가사유상을 동시에 전시할 경우 관람객의 시선을 어느 반가사유상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정면에서 바라보는 관람객과 뒷면의 반가사유상을 보는 관람객의 시선 마주침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두 반가사유상만 전시할 경우 전시장의 크기와 형태는? 반가사유상에 집중하려면 조명을 어둡게 해야 하는데, 외부의 밝은 곳에서 들어오는 관람객을 편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alt



나는 영화와 무대에 관심이 많았다. 10대 시절부터 연극 무대에 들락거린 덕분에 소극장의 크기가 무대로부터 24m를 넘지 않아야 하고 사람의 눈은 수평에서 위로 27도 정도의 범위를 편하게 인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1970년대 당시의 소극장은 대부분 지하에 있었기에 밝은 외부에서 들어갈 때 눈은 어느 정도 어둠에 익숙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었고, 나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반가사유상 전시실을 구상하면서 오래전 기억을 떠올렸다. 반가사유상은 서양에서의 입체물인 조각과 구분되는 현재까지 살아 있는 영속 가능한 표정의 구현으로 보았기 때문에 표정을 읽으려는 관람객과 배우의 관계를 설정한 연극 무대인 소극장을 만들면 해결된다고 생각했다. 

들어올 때와 나갈 때의 전이 공간인 복도를 만들었고, 내부는 길이 방향으로 24m를 확보해야 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전시실이 작았기에 박물관 측에 옆 전시실 확보가 가능한지 물었고,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응해주었다. 우리는 먼저 동영상을 만들어 보여주며 기획 의도를 확신시켰다. 그때의 동영상은 현재의 실물 모습과 신기할 정도로 유사하다.

문제는 관람객이 반가사유상의 뒷면을 본다는 것이 연극 무대와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반가사유상을 낮게 배치해 앞뒤 관람객의 시선이 아래로 향해 마주치지 않도록 실물 크기의 모형과 무대를 만들어 실험했는데, 박물관 측은 그 부분만큼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안 된다고 하였다. 경외의 대상인 데다 반가사유상의 섬세한 표정을 보려면 약간 올려다봐야 그 미소의 진가를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충분히 이해되었지만, 관람객의 시선 처리는 여전히 어려운 난제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12제자가 테이블에 나란히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정면성이 강조된 일소점 투시의 전형적인 15세기 르네상스의 회화다.

두 반가사유상을 배치해야 하는 반가사유상 전시실은 공간에 전형적인 소점이 생기지 않고 움직임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alt

최후의 만찬 The Last Supper

(레오나르도 다빈치,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 PUBLIC RELEASE




사유의 방 세 가지 시점

사유의 방에는 세 가지 다른 시점이 있다. 하나는 들어올 때와 나갈 때의 시점이 확연히 다르게 느껴지는 관람객의 시점이고, 다른 하나는 기울어진 벽에서 인지되는 천상에 계신 보살의 시점에서 사유의 방 전체를 바라보는 시점이다. 

두 반가사유상은 같은 곳을 바라보지 않는다. 때문에 반가사유상과 관람객의 관계는 시선이 동시에 마주치지 않기에 공간은 경직되지 않고 사람들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낸다. 길이 24m의 공간은 두 반가사유상의 섬세한 미소를 인지할 수 있고, 둘러싼 벽체와 재료의 섬세한 조율을 통해 비일상적 공간감을 만든다.

‘사유의 방’ 벽체와 바닥, 천장은 상식적 일소점 투시가 생기지 않도록 조율해 눈 이외 다른 감각이 분위기를 형성하는 비시각적 체계의 공간이다. 빛을 흡수하는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모든 벽은 물러나고 두 반가사유상만 빛과 반응해 표정을 드러낸다. 흙, 숯, 옻 등의 재료로 빛을 반사하지 않고 흡수해 분위기를 깊게 만들고 두 반가사유상의 표정만 드러나게 만들었다. 들어가는 복도와 나오는 복도는 사람의 눈이 어두움과 밝음에 적응하는 시간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일종의 전이 공간으로 비움을 위한 준비 공간이기도 하다.   

나는 반가사유상의 미소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지속되어온 표정이라고 생각했기에 현재의 관람객과 어떻게 만날지가 중요했고,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미래를 계획한 공간이다. 젊은 세대가 공감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고, 우리 문화유산의 배경이 되어 그 가치가 빛난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 될 것으로 믿었다. 

헌신적으로 노력해주신 박물관 관계자 및 시공에 관여한 많은 분의 노고와 현장에서 살다시피 한 원오원 식구들의 노력에 지면을 빌려 감사 인사를 전한다.



alt





alt

글을 쓴 최욱은 건축사사무소 원오원아키텍스의 대표이자, 이탈리아 건축 디자인 매거진 『도무스』 한글판 발행인이다. 홍익대학교와 이탈리아 베네치아 건축대학교에서 건축 설계 및 이론을 공부했으며, 미국 맥도웰 콜로니와 스페인 발파라이소 파운데이션에서 펠로우십을 받았다. 대표작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학고재 갤러리,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가파도 프로젝트, 삼일빌딩 리노베이션, 현대모터스튜디오 부산 등이 있다.



TOP
SNS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