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보전> 유럽 순회 전시 아카이브

두 번째 이야기


글. 장상훈 국립진주박물관장

인왕제색도와 달항아리. 전시장 입구를 장식한 두 작품. 조선 후기 최고 화가 정선의 대표작이 전시장에 들어서는 관람객의 시선을 끈다. 그리고 한쪽에 무심하게 놓인 달항아리. 혹시 수년 전 리움(Leeum)에서 본 장면일까. 기억을 더듬어보자… 아니다. 그렇다면 사진의 흑백 톤에서 촬영 시점을 가늠해볼 수 있을까… 그렇다. 60년 전이다. 그리고 ‘Koreaanse Kunst’라는 낯선 언어의 전시 제목... <한국국보전>이 유럽을 순회했을 때다. 두 번째 개최지 네덜란드 헤이그시립박물관(Haags Gemeentemuseum, 현재 Kunstmuseum Den Haag)이다.(도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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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 헤이그시립박물관 <한국국보전> 입구 모습 (1961)

도 2. 헤이그시립박물관 <한국국보전> 전시 모습 (1961)




한국 문화를 외국에 소개하는 전시를 기획한다고 치자. 관람객 앞에 내놓을 첫 작품은 무엇이 좋을까. 현지 큐레이터들과 국립박물관 김재원 관장, 최순우 과장이 전시를 준비하면서 수백 번도 더 했을 고민의 결과가 바로 이 사진 속에 들어 있다. 그들의 고민은 오늘날 우리의 고민이기도 하다. 이 사진이 없다면 60년 전의 치열한 고민은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잘 보관된 사진 한 장의 위력은 이처럼 크다. 아카이브가 중요한 까닭이다.

많은 사연을 품고 있는 해묵은 아카이브 속에는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일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1961년 유럽 순회 전시에 달항아리가 이처럼 비중 있게 전시되었다는 사실을 이 사진이 보여준다. 이에 앞선 미국 순회 전시에는 달항아리가 전시되지 않았다. 또 헤이그 전시에 앞서 진행된 런던 전시 도록에는 달항아리 도판이 실리지 않았다. 달항아리의 가치를 제대로 알리려는 시도가 헤이그 전시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누구의 기획이었을까. 유럽 전시가 끝난 뒤 1963년에 열린 <이조백자항아리 특별전>을 기획한 최순우 과장의 아이디어였을까. 그렇다면 최 과장은 어떻게 이 작품의 의미와 가치를 현지 큐레이터들에게, 또 김재원 관장에게 설명했을까. 아무런 문양이 없는 둥근 항아리를 전시실 입구에 두자는 제안에 전시 관계자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그것도 전시장 초입에… <인왕제색도>와 함께.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진다. 이 모든 질문이 헤이그시립박물관 아카이브에 소장된 사진에서 비롯된다.

이 아카이브가 소장한 <한국국보전> 관련 자료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전시 모습을 담은 11장의 사진이다. 이 사진들이 돋보이는 것은 유럽 순회전시 모습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사진이 적기 때문이다. 앞서 살핀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의 사진은 개별 전시품을 촬영한 것이나 전시장을 찾은 유명인을 조명한 것이어서 그 나름의 의미는 있지만 전시실 전체를 조망한 것은 아니었다. 이에 비해 헤이그시립박물관 전시 모습을 담은 사진은 전시실 입구부터 전시 전체 분위기를 살필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유용하다.

헤이그시립박물관 아카이브에 이관되어 있는 <한국국보전> 전시 기록은 유럽 내 참여 박물관들 사이에 오간 실무 협의 서신, 전시장 사진, 신문 스크랩, 도록으로 대별된다. 헤이그의 이 아카이브를 떠올릴 때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은 인터넷 서비스다. 헤이그시립박물관 아카이브가 소장한 자료는 모두 전산화되어 어떤 연구자든 요청하면 <한국국보전> 파일 전체를 받아볼 수 있다.

<한국국보전>의 세 번째 개최지 파리 체르누스키박물관은 가장 체계적이고 충실한 관련 아카이브를 가지고 있다. 이 박물관은 파리에서 활동한 이탈리아 사업가 체르누스키(H. Cernuschi, 1821~1896)의 문화재와 저택 기증으로 1898년에 설립된 중국 고고·미술 전문 시립박물관이다. 두툼한 서류 보관 상자 2개 분량의 자료들은 다시 주제별로 분류된 10여 권의 서류 파일 속에 담겨 있다.

이 기록물 속에는 <한국국보전>의 준비 과정 대부분이 담겨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김재원 관장이 1958년 9월 15일자로 체르누스키박물관의 엘리세프(V. Eliséeff) 관장에게 <한국국보전>의 파리 전시를 제안하는 편지(도3)와 1960년 11월 파리 주재 한국대사관이 유럽의 참여 희망 국가 대표들을 소집해 연 회의의 제안서와 회의록(도4)이 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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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3. 1958년 9월 김재원 관장이 엘리세프 관장에게 보낸 편지 원본

도 4. 1960년 11월 주 프랑스 한국대사관이 주최한 회의 회의록




1960년 11월 파리의 체르누스키박물관에서 열린 이 회의는 김재원 관장의 회고록에 언급만 되어 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었다. 회의록에는 회의에 참여한 여러 나라 대표의 면면이 드러난다.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8개 나라의 미술·박물관계 인사, 파리 주재 외교관들과 <한국국보전>을 후원한 포르투갈 굴벤키안 재단 인사 등이 참여했다. <한국국보전>을 유치하지 않은 덴마크, 이탈리아, 스웨덴의 파리 주재 외교관 이름도 확인할 수 있다. 김재원 관장 회고록의 내용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01 이처럼 탄탄한 아카이브는 기억을 검증하고 엇갈리는 기록을 비교해 실상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해주는 힘이 있다.


01) 김재원, 『경복궁야화』, 탐구당, 1991, pp.140-141. 이 회고록에서 김재원 관장은 영국예술위원회 담당자, 덴마크·이탈리아·스웨덴·오스트리아의 파리 주재 외교관들과 굴벤키안 재단 담당자의 참석을 언급하지 않았다.





또한 이 아카이브에는 전시회를 마련하고 운영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세세히 담겨 있다. 작품 진열을 위한 평면 계획(도5)과 진열 계획을 담은 도면, 도록의 편집안(도6)과 문안 교정지, 대중교통에 내다 걸 특별전 광고 디자인(도7), 개막식 등 행사 초청장과 초청자 명단, 무료 단체 관람 요청서와 허가서, 예산 집행 청구서와 결산 내역서, 작품 운송 계획, 관람객 통계, 전시 개최 박물관들과의 실무 협의 서신, 전시 협약서 초안과 최종본 등등. 

이처럼 상세한 자료가 보관되어 있지만 그 방법은 소박하다. 생산된 문건들을 주제별로 분류해 서류 상자 속에 넣고 오랜 시간 충실히 보관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료를 소중히 여기며, 자료의 가치를 알고 찾아온 연구자에게 가능한 만큼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다. 자료 열람을 위해 박물관 아카이브를 찾았을 때, 담당자는 당시의 도록은 남아 있는 것이 없다면서 두툼한 도록 복사물을 제공해주었다. 요청하지도 않은 일이었기에 그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처럼 박물관 사업에서 생산되는 각종 기록물을 충실히 수집하고 보관해 업무와 연구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서구의 박물관에서는 일찍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무엇보다 아카이브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보인다. 사업에 들이는 정성에 비해 그 기록을 보존하는 일에 대한 관심은 적은 것이다. 기록을 소중히 하는 것은 그저 추억을 정리하기 위함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신이 한 일의 의미와 가치를 완성하기 위함일 것이다. 세계의 학자들이 이제 한국의 박물관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온갖 역경을 딛고 성장해온 우리나라 박물관의 발자취를 무엇으로 어떻게 말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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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5. 파리 체르누스키박물관 <한국국보전> 평면 계획

도 6. 파리 체르누스키박물관 <한국국보전> 도록 편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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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7. 파리 체르누스키박물관 대중교통 광고물 디자인 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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