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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한 생채기

漆, 아시아를 칠하다

2021.12.21.~2022.3.20.


글. 노남희 국립중앙박물관 세계문화부 학예연구사

특별전 <漆, 아시아를 칠하다>는 특별한 나무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다. 아시아에서만 자라는 이 나무는 바로 ‘옻나무’로, 이번 전시는 옻나무의 수액이자 기능적 목적에서 출발한 ‘옻칠’이라는 도료가 어떻게 아시아의 칠공예 문화로 다채롭게 발전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전시다.   

옻칠을 채취하는 것과 기물에 발라 칠기로서 완성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일단 만들어놓으면 그보다 곱절의 시간을 견디게 해주기 때문에 옻칠은 가히 ‘시간의 예술’이라 할 만하다. 또한 옻칠은 나무, 가죽, 직물 등 여러 재료에 칠해지며 다양한 형태의 칠기로 거듭났고, 자개나 금은 등의 장식 재료를 만나 화려한 예술로 피어났다. 이번 전시에서는 옻칠의 이러한 시간성, 물성, 예술성을 비롯해 아시아인들이 옻칠이라는 공통의 재료를 이용하면서도 지역에 따라 어떻게 발전시켜왔는지 다양성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전시는 프롤로그 공간의 미디어아트에서 시작된다. 칠공예라는 이야기의 시작점인 옻나무를 주제로 옻나무 전체와 세부 이미지, 상처를 냈을 때 고이는 수액과 정제된 옻칠의 이미지를 고루 섞어 흑백 영상으로 연출했다. 칠기 제작에 사용되는 삼베와 비슷한 천을 길게 늘어뜨려 영상을 투영했고, 관람객들은 이 가상의 옻나무 공간을 통과해 본 전시로 들어가게 된다.(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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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1. 프롤로그 - 옻나무 미디어아트




2부 - 칠기를 꾸미다

옻칠은 본래 방수와 방충이라는 기능적 목적에서 사용되기 시작했으나, 특유의 광택과 접착력에 주목한 사람들은 이를 이용한 다양한 장식 기법을 만들어냈다.

옻칠을 이용한 초기 장식 기법을 색을 입히는 것, 이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거나 새기는 것, 옻칠의 접착력으로 금은판 등 귀한 물질을 무늬대로 오려내 붙이는 것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본래 색이 없는 도료인 옻칠에 산화철이나 진사辰砂 같은 물질을 섞어 검은색과 붉은색 등 여러 색을 내고, 이를 이용해 다양한 그림을 그려 꾸미는 것은 매우 초기부터 사용되어 온 기법이다. 한편, 동아시아 7~8세기 무렵에는 옻칠한 기물 위에 무늬대로 오린 금은판을 붙이고 다시 옻칠한 후 갈아내는 평탈平脫 기법이 유행했는데, 우리나라 통일신라시대 청동거울 중에서도 평탈 기법으로 꾸민 예를 볼 수 있다.(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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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2. 꽃과 동물무늬 옻칠 거울

(통일신라, 지름 18.2cm, 국립중앙박물관)

3부 - 개성이 드러나다

2부에서 살펴본 기본 장식 기법을 바탕으로 발전한 칠공예를 한국,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크게 네 지역으로 나누어, 각 지역에서 주로 발전한 장식 기법을 비교해 본다. 한국에서는 자개를 가공해 붙인 나전螺鈿 기법이, 중국에서는 옻칠 층을 두껍게 쌓아 조각한 조칠彫漆 기법이, 일본에서는 옻칠로 무늬를 그리고 마르기 전에 금가루를 뿌려 갈아내는 마키에蒔繪 기법이 특히 발전했다. 한편, 동남아시아에서는 미얀마·타이·베트남을 중심으로 칠기가 제작되어왔고, 칠 반죽을 붙이거나 색유리를 박아 꾸미는 등의 장식 기법이 사용되었다. 

특히 3부의 중심 공간에서는 2020년 일본에서 구입한 ‘나전 대모 칠 국화 넝쿨무늬합’을 처음으로 선보인다.(도3) 고려시대 나전칠기 제작 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이 합은 현재 전 세계에 단 3점밖에 남지 않은 온전한 형태의 모자합母子盒 중 한 점이다. 합을 전시한 공간 앞에는 이 합의 시간을 담은 연출 영상을 먼저 보게 해 궁금증과 호기심을 유발하도록 했다. 또한 중국 조칠기 부분에서는 중국 상하이박물관에 소장된 다양한 조칠기 34점을 만날 수 있다.(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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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3. 나전 대모 칠 국화 넝쿨무늬합

(고려 12세기, 높이 3.2cm, 지름 10.0cm,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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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4. 중국 조칠기




4부 - 경계를 넘어서다

칠기는 오래도록 지역적으로는 아시아, 사용 계층적으로는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한정된 물품이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역과 계층이라는 경계를 넘어서게 된다. 

특히 대항해시대와 함께 일본에서 만들어진 유럽 수출용 칠기(남만칠기南蠻漆器)는 독특한 모양과 화려한 장식이 특징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된 두 점의 남만칠기를 전시해 유럽인들의 시선을 끈 수출용 칠기의 자태를 감상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사용 계층이 확대되며 무늬와 형태에 변화가 보이는 조선 후기의 나전칠기와 오늘날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 상품으로서 제작·판매되어 전 세계인과 만나고 있는 동남아시아 미얀마의 칠기도 만나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에필로그 부분에서는 한국공예·디자인진흥원의 도움을 받아 칠공예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했다. 관람객들은 이 공간에서 옻칠의 다양한 속성과 현대적 변주를 감상하며 전시의 감상을 갈음할 수 있을 것이다.(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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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5. 현대칠기




기능성에서 출발해 수많은 장식 기법을 거쳐 칠공예라는 하나의 예술 장르로 거듭난 옻칠은, 옻나무가 자생하는 아시아 전역에서 기능과 예술을 결합한 하나의 문화가 되어 도자기나 금속기 못지않은 풍부한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깊어지는 겨울날, 이번 전시를 통해 잘 몰랐던 아시아 칠공예의 세계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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