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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박물관 아카이브 기행 33

〈한국국보전〉미국 순회전시의 개막

글. 장상훈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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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1. 〈한국국보전〉 전시품을 수송한 미국 군함(USS Regulus AF-57)(출처: NavSource Online: Service Ship Photo Archive)



미국 전시에 앞서 1957년 5월 10일부터 6월 9일까지 국립박물관에서 열린 〈해외전시 한국국보전〉이 성공리에 끝나자1 국립박물관은 곧바로 미국 전시를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한미 양측이 1957년 2월 체결한 전시 협정에 따라 전시품 전체가 같은 해 11월 1일까지 미국 전시의 첫 개최지인 미국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에 도착해야 했기 때문이다.2 미국의 8개 도시를 18개월간 순회할 전시품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국립박물관은 미국 호놀룰루 미술관의 문화재 포장 전문가 프레인(Waher W. Fraine)을 초청했다. 6월에 내한한 그는 국립박물관 직원들과 함께 7월 8일까지 포장을 마칠 수 있었다.3 선편으로 태평양을 건너고 다시 철도편으로 미 대륙을 서에서 동으로 횡단해 워싱턴까지 가는 장거리 수송에 대비하기 위한 일정이었다.
드디어 8월 28일 오전 철도편으로 서울을 떠난 전시품은 오후에 부산에 도착했고, 부산항에 정박해 있던 미 해군 수송선 레귤러스(U.S.S. Regulus AF-57)에 적재되었다(도판 1). 8월 30일 오전에는 부산항을 떠나 장정에 올랐다. 이 함정은 하와이를 경유해 9월 22일, 24일의 항해 끝에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오클랜드항에 도착했다. 이튿날 전시품은 철도 화차에 환적되었고 여기서 금관총 금관 등 뱅크 오브 아메리카(Bank of America) 샌프란시스코 지점에 있던 6·25전쟁 소개품이 합류되었다.4 마침내 9월 27일 워싱턴에 도착한 전시품은 같은 달 30일 목적지인 미국 국립미술관 수장고에 안전하게 격납되었다.5 서울의 국립박물관을 떠나 워싱턴 국립미술관까지 장장 34일간의 긴 여정이었다.
“전시회에 항시 2명 이하의 한국인을 수반한다”는 한미 간 협정 제1조 4항에 따라 미국 순회전시 기간 중 2명의 국립박물관 직원이 현지에 상주했다. 전체 기간의 전반에는 김재원 관장과 최순우 보급과장이, 후반에는 김원용 연구과장과 진홍섭 경주분관장이 관리관으로 파견되었다. 미국 순회전시 일정에서 가장 중요한 첫 개막식에 한국 국립박물관 김재원 관장이 참석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물건을 잘 알고 진열품도 잘 다루는” 최순우 과장이 그를 수행한 것도 무난한 선택이었다.6 순회전시의 후반부를 김원용 과장이 담당한 것은 1954년부터 1957년까지 뉴욕 대학교에서 유학해 미국인들과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없는 간부 직원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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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2. 〈한국국보전〉 개막 행사에 참석한 양유찬 주미대사(가운데)와 김재원 관장(가장 오른쪽)(출처: Courtesy of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Gallery Archives)



앞서 살핀 바와 같이,7 미국 국립미술관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개최한 일련의 외국 문화재 전시들은 전후 세계 질서의 재편 과정과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패전국인 독일, 오스트리아, 일본의 문화재에 이어서 한국의 문화재를 미국의 수도에서 전시한 것은 냉전 체제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반소反蘇 연합의 구성원을 규합하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특히 6·25전쟁을 거치면서 혈맹을 맺은 미국과 한국이 워싱턴에서 개최한 〈한국국보전〉은 양국의 결연한 동맹을 과시하는 장이었다.
미국 국립미술관이 펴낸 영문 전시 도록은 이러한 의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도록 첫머리에 이 전시의 명예 후원자(honorary sponsor)로 미국과 한국의 대통령 내외를 내세우고, 그 아래로 양국의 상대국 주재 대사의 이름을 명예 관리관(honorary officer)로 실었다. 이어서 한국 국회의장, 문교부 장관, 외무부 장관, 재무부 장관, 공보국장과 더불어 미국 국무부 장관, 육군 장관, 해군 장관, 국무부 동아시아 차관보의 이름을 후원자로 실었다.
이어서 실려 있는 최규남 문교부 장관의 서언은 이 전시회를 개최하는 한국 정부의 의도를 잘 보여준다. “우리 한국인들이 한국 문화의 정수를 담은 이 전시를 미국에 보낸 것은 공산 침략에 맞서 한국인들과 함께 싸운 미국의 모든 친구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함입니다. 이 싸움은 한국과 미국이 공유하는 대의, 곧 인류의 존엄과 자유를 위한 것이었습니다.”8
또한 이 전시는 대다수 미국인들에게 매우 생소한 한국 문화를 알리는 자리였다. 첫 개최지인 미국 국립미술관 워커(John Walker) 관장이 전시 도록의 서문에 밝힌 대로, “한국 미술은 그 긴 역사와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서양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낯선 이 분야를 미국 대중들에게 소개하는 것은 매우 드문 기회”였다. 이 전시를 통해 미국인들이 한국 미술의 다양성과 독창성을 발견하기를 바란다면서, 그는 최규남 장관과 마찬가지로 이 전시가 한국과 미국 국민의 상호 이해를 증진하기를 바란다는 말로 글을 맺었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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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3. 〈한국국보전〉 개막 행사로 진행된 국악 연주(『문화재 미국 전시 보고서』 전시 상황 사진 p.4)



김재원 관장의 말대로 6·25전쟁에 참전한 수많은 미군 병사는 전쟁의 폐허로 변한 한국을 보았을 뿐 한국이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가진 나라임을 알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대다수 미국인들도 한국에 대해 6·25전쟁만을 떠올릴 뿐이었다.10 또한 한국 문화는 중국의 아류일 것이라는 전반적인 편견도 큰 장벽이었다. 이러한 실정에서 1957년 12월 14일 국립미술관에서 열린 개막 행사와 현지 언론 보도는 김 관장에게 가슴 벅찬 충격이었다.
워커 관장은 워싱턴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연회장인 설그레이브 클럽(Sulgrave Club)에 오찬을 마련했고, 여기에 워런(Earl Warren) 대법원장을 비롯해 로버트슨(Walter Robertson) 동아시아 국무차관보, 버드 재무차관보, 개리슨(Norton Garrison) 해군차관보와 미국 박물관 관계자, 양유찬梁裕燦(1897~1975) 주미대사, 영국·프랑스의 외교사절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11 오후 3시부터 국립미술관에서 열린 개막 행사에 초청된 각계 인사는 1,845명에 달했다. 전시장에서는 연희전문학교 영문과 출신으로 이화여자전문학교에서 국악을 가르치다 1947년 도미해 미국의 소리 방송(VOA)에서 일하던 황재경黃才景(1906~1984)의 국악 연주와 신미경의 민요 독창도 진행되었다(도판 2,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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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4. 『워싱턴 포스트(Washington Post)』 1957.12.15.자 제1면에 실린 김재원 관장과 전시품 사진(『경복궁야화』, p.125에서 옮겨 실음)



이날 저녁 양유찬 주미대사가 한국대사관에서 개최한 칵테일파티에는 200여 명의 외교사절이 초청되어 성황을 이루었다.13 전시 개막일이 큰 경축일 같았다는 김재원 관장은 이날 자신이 마치 외교관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고 회고했다.14 사실이 그러했다. 공산 진영에 맞서 자유 진영의 최전선을 지키는 대한민국의 국립박물관장으로서 〈한국국보전〉 개최의 한 주역이었던 그는 이날 자연스럽게 한미 외교의 중심에 있었다. 전시 개막 이튿날 미국의 유력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 제1면에 실린 그와 한국 미술품의 사진은 이러한 정황을 여실히 보여준다(도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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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특별전의 총 관람객에 대한 기록은 두 가지가 남아 있다. 문교부가 미국 순회전시에 대한 종합보고서로 1960년 6월에 발간한 『문화재 미국 전시 보고서』(p.19)에는 51,092명, 외무부가 1957년 발간한 영문 홍보 사진집 『Korea today 1957』(p.68)에는 11만여 명이라고 되어 있다
2) 『문화재 미국 전시 보고서』, pp.11-16
3) 『문화재 미국 전시 보고서』, p.19. 프레인이 전수한 문화재 포장 기술은 이후 국립박물관이 장거리 운송 목적의 문화재 포장 역량을 갖추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김재원, 『景福宮夜話』, 탐구당, 1991, p.141 참조)
4) 장상훈, “국립박물관 아카이브 기행 15: 1950년 6·25전쟁의 발발과 국립박물관”, 『박물관신문』 제571호, 2019년 3월, pp.26-27. 참조
5) 『문화재 미국 전시 보고서』, p.20
6) 『경복궁야화』, p.121
7) 장상훈, “국립박물관 아카이브 기행 28: 한국 문화재 국외전시 사업의 태동”, 『박물관신문』 제584호, 2020년 4월, pp.26-28. 참조
8) National Gallery of Art et al.. Masterpieces of Korean Art, 1957, pp.11-12
9) Masterpieces of Korean Art, pp.13-14
10) 김재원, 『博物館과 한평생』, 탐구당, 1992, p.138
11) 위의 책, p.167
12) 그는 1954년 7월 이승만 대통령의 방미 시에도 이 대통령이 베푼 미국 대통령 초청 만찬장에서 국악 공연을 했다고 한다
13) 『경복궁야화』, p.124
14) 『博物館과 한평생』, p.170 및 『경복궁야화』,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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