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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의 시선

두루마리 그림 속으로 여행을 떠나다

심사정의 〈촉잔도〉와 이인문의 〈강산무진도〉

글. 오다연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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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1. 심사정(1707~1769), 〈촉잔도〉, 조선 1768년, 종이에 엷은 색, 58.0×818.0cm(화면), 간송미술문화재단(왼쪽)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심사정의 〈촉잔도蜀棧圖〉, 이인문의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 근대 서화가이자 서화감평가인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1864~1953)이 ‘우리나라 3대 두루마리 그림(횡권)’으로 꼽은 작품이다. 횡권은 오른쪽에서 시작해 왼쪽 방향으로 길게 이어지는 그림 형식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3점 중 그림 자체가 1m 정도인 〈몽유도원도〉와 달리 〈촉잔도〉와 〈강산무진도〉는 그림 길이가 8m를 넘는 장권長卷이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특별전 〈새 보물 납시었네, 신국보보물전 2017-2019〉에서는 우리나라 3대 횡권 중 2점인 〈촉잔도〉(보물 제1986호)와 〈강산무진도〉(보물 제2029호)가 나란히 전시 중이다.
〈촉잔도〉(도판 1)는 심사정沈師正(1707~1769)이 친척인 심유진沈有鎭(1723~1787), 심이진沈以鎭(1732~1768) 형제의 요청으로 1768년에 제작한 그림이다. 촉잔은 중국 장안에서 촉 지방(현재 쓰촨성)으로 가는 길로, 그 길은 매우 험하지만 자연경관이 수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좁고 위험한 길이 계속되는 촉잔은 험난한 인생이나 벼슬길에 비유되어 예술 작품의 주제가 되었는데, 당나라의 시인 이백李白(701~762)의 「촉도난蜀道難」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심사정은 6폭의 종이를 잇대어 굽이굽이 펼쳐진 촉의 산천을 담아냈다. 화면 처음부터 등장하는 절벽길과 기이한 형태의 암석, 급류와 폭포, 동굴 등을 거칠게 묘사하며 촉산수의 험준함을 담아냈다. 호방하고 대담한 붓질로 산과 계곡, 폭포 등을 그리고, 그 중간중간을 연무로 처리하며 공간을 자연스럽게 이어갔다. 심사정은 할아버지의 과거시험 부정과 역모 죄로 벼슬길이 막혀 직업 화가로 살아야 했는데, 정선鄭敾(1676~1759)의 그림과 중국 화보를 바탕으로 다양한 장르의 그림을 그리며 화법을 익혔다. 이 그림의 끝부분에도 중국 송대 화가인 이당李唐의 촉잔도를 모방해 그렸다는 화가의 글이 적혀 있다. 말년 작품인 〈촉잔도〉에 보이는 대담한 구성, 다양한 필법, 황갈색이나 청록의 담채 표현 등은 심사정이 평생에 걸쳐 이룬 독자적인 화법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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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2. 이인문(1745~1824 이후), 〈강산무진도〉, 조선 19세기 초, 비단에 엷은 색, 43.9×856.0cm, 국립중앙박물관(오른쪽)



심사정을 좇아 숨 가쁘게 촉으로 가는 길을 오르내렸다면, 그 맞은편에 펼쳐진 이인문李寅文(1745~1824 이후)의 〈강산무진도〉(도판 2)는 또 다른 여행으로 관람자를 안내한다. 이인문은 차비대령화원差備待令畫員을 38년이나 지낸 궁중화원으로 김홍도金弘道(1745~1806 이후)와 함께 19세기 전반까지 활약했다. 〈강산무진도〉는 안개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비탈진 언덕과 그 아래 두 명의 인물로 시작한다. 이들을 따라 사찰과 건물을 지나면 강과 선박을 볼 수 있고, 강변 마을을 지나면서 점차 험준한 산으로 들어가게 된다. 기승전결의 구성 속에 산속 진입은 클라이맥스 부분에 해당한다. 이인문은 몇 개의 커다란 산봉우리를 배치하고 그 사이에 도르래와 폭포, 기암절벽과 동굴, 마을 등을 조화롭게 배치했다. 흥미롭게도 횡권이라는 그림 매체와 화면의 구성, 가을철의 산수 등은 그의 스승인 심사정의 〈촉잔도〉와 유사하다. 특히 아랫마을과 윗마을을 연결하는 도르래, 태호석과 같은 기암과 그 위로 무너질 듯한 절벽, 화면 말미에 반복해서 그려지는 마을과 집집마다 붙어 있는 수차 등은 매우 흥미로운 회화적 요소로, 두 그림에 동일하게 등장한다(도판 2). 아마도 이인문은 심사정의 그림을 보았거나 그가 모방했다는 이당의 〈촉잔도〉를 감상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인문은 자신만의 정제된 남종화법으로 산수를 그렸으며 보다 밀도 있고 역동적으로 경물을 묘사했다. 나아가 〈강산무진도〉는 〈촉잔도〉와 달리 그림 곳곳에 360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각자의 일을 부지런히 하고 있다. 대형 선박이나 고깃배를 타고 있거나 수레와 나귀, 도르래 등으로 물자를 운반하거나 또는 장터에서 물건을 팔거나 한가로이 친구들과 담소를 즐기고 있다. 이처럼 대자연 속에서 자신의 일을 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인생이 〈강산무진도〉가 전하는 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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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열장에 펼쳐진 두루마리 그림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면서 산수화를 감상하고 풀벌레, 폭포 등 자연의 소리를 듣는 것은 매우 신선한 경험이 될 것이다. 변화무쌍한 자연 속에는 절벽의 위아래를 연결하는 도르래가 있고, 벼랑이나 계곡을 건널 수 있는 다리들이 놓여 있다. 예측할 수 없고 되돌아갈 수 없는 인생길에서 누군가가 만든 작은 배려와 도움은 다시 나아갈 힘을 주기도 한다. 그렇게 걷고 걸으면 화면 끝부분에 그려진 마을에 도착해 꿈같은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가을 문턱에 접어든 9월, 2점의 보물 그림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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